기러기 부인, 남편몰래 외국서 이혼판결 가능할까

[조혜정의 사랑과 전쟁]

조혜정 변호사 2016.10.18 15:17

/이지혜 디자이너


Q) 미국에서 질문 드립니다. 남편과 저는 결혼한 지는 20년 정도 됐고, 10년 전 제가 아들 교육을 위해 아들과 함께 미국에 가면서부터 기러기 부부로 살아왔습니다. 남편은 한국에서 사업을 해서 저와 아들의 생활비와 교육비를 부쳐주고, 1년에 두어 번 정도 미국에 와서 며칠간 같이 지내다가 돌아가곤 했습니다.

미국에 온 후 제가 아들 공부를 위해서 정말 열심히 노력한 덕에 아들은 좋은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아들이 대학에 들어간 후부터 남편이 그만 돌아오라고 하는데 저는 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아직까지 미국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사실 기러기 부부생활을 선택한 이유 중 결혼 초부터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아 미국에 온 것도 있으니까요. 같이 살면서 자주 싸워 이혼하는 것보다는 기러기 부부로 지내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그래도 학비와 생활비 부쳐주는 게 고마워서 처음에는 자주 전화하고 미국에 오면 잘해주려고 노력했는데, 남편은 늘 자신이 한 만큼 저한테 대접을 못 받는다고 불만이 많았습니다. 2년 전 미국에 왔을 때 크게 싸워 그 때부터 남편이 미국에 오지 않고 1년 전부터는 서로 전화도 안 합니다. 다시 한 집에 살 수는 없을 거 같아 오랫동안 고민 끝에 이혼하자고 했더니 남편은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혼을 당하느냐'하면서 절대 이혼은 안 한다고 하네요.

남편이 이혼을 거부하니 어찌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얼마 전 친구가 미국법원에서 이혼판결을 받아서 이혼하라고 하네요.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미국법원에서 이혼판결을 받는 방법이 있는데 시간도 별로 안 걸린답니다. 제가 미국법원에서 이런 식으로 이혼을 하면 한국에서 인정이 될까요?

A) 요즘 기러기 부부와 국제결혼이 많다보니 외국에서 이혼을 진행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듯합니다. 선생님처럼 한국에 있는 배우자가 이혼을 거부하는 경우 이혼이 쉬운 외국법원에서 이혼판결을 받으면 어떨까 하는 질문을 하시곤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방식으로 받은 외국법원의 이혼판결은 한국에서 그 효력을 인정받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외국판결의 효력이 한국에서 인정되려면 그 외국판결이 우리나라 민사소송법에서 정한 조건에 맞아야 하는데 한국에 있는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미국에서 받은 이혼판결은 이 조건을 못 맞출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 민사소송법은 외국법원의 판결을 우리나라에서 승인하는 조건으로 4가지(재판관할권, 소송서류송달 혹은 응소, 선량한 풍속 및 사회질서, 상호보증)를 들고 있는데, 그 중 외국법원의 이혼판결과 관련해서 주로 문제되는 부분이 외국법원의 재판관할권과 소송서류송달입니다.


미국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경험상 친구분이 권하는 간편한 절차는 소송서류에 남편의 주소를 가짜로 적거나 남편이 행방불명이라고 써서 우리나라의 공시송달(公示送達)과 비슷한 결정을 받고 남편이 소송서류를 못 받은 상태에서 이혼판결을 받는 절차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동안 이런 방식으로 받은 외국이혼판결의 효력에 대한 판결이 몇 번 있었는데, 이런 외국판결은 한국에서 승인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법원의 입장입니다.

국제이혼사건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피고의 주소지가 있는 국가의 법원이 재판관할권이 있으니까(피고주소지주의) 미국법원은 한국에 주소가 있는 피고에 대한 이혼소송의 재판관할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재판할 경우 피고가 소송서류를 못 받은 상태에서 판결이 나니 소송서류가 피고에게 송달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에도 어긋납니다. 한 마디로 이혼소송을 당한 사람이 소송당한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외국에서 몰래 받은 판결은 한국에서는 인정이 안 된다는 것인데, 생각해보면 참 당연한 얘기입니다.

만약 선생님이 남편 몰래 미국법원에서 이혼판결을 받아서 한국에서 이혼신고를 했는데 남편이 나중에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경우 남편은 미국법원의 판결로 된 이혼이 무효라는 소송(이혼무효확인)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소송에서 법원은 미국이혼판결로 한 이혼은 무효라는 판결을 할 것이니, 선생님은 결국 한국법원에 이혼소송을 다시 해서 이혼을 해야 합니다. 이처럼 쉽고 간편하게 하자는 본래 의도와는 반대로 장기간 여러 가지 소송을 해야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충분히 고려하셔서 무리한 결정은 피하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조혜정 변호사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차별시정담당 공익위원직을 맡고 있다.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대한변협 인증 가사·이혼 전문변호사로 16년째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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