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고 삽시다"

[이찬희 변호사의 '서초동 연가(戀歌)'] 변호사 적었던 과거와 달리 생계 걱정할 정도로 어려운 젊은 변호사들도 있어…변호사 생존권과 적정 비용의 법률서비스 균형 모색할 때

이찬희 변호사(법무법인 정률) 2016.10.25 06:00


지난 번 대한변협회장 선거에 등장한 구호였다. "밥은 먹고 삽시다." 

변호사들의 생존권사수가 머지않아 가장 절실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므로 미리 대비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 법률시장이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변호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유사직역들까지 변호사의 업무를 침탈하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조금만 멀리 보면 변호사업계를 덮칠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오는 것이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구호는 사시존폐라는 이슈에 묻혀버렸다. 결국 숫자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젊은 변호사들의 사시존치 적극추진 요구를 받아들인 후보가 협회장에 당선됐고, 그 후 변호사회는 사시존폐 논란으로 극심한 갈등 속에 빠졌다.


역사에는 만일이라는 가정법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법무사와 세무사의 소송대리권, 행정사의 행정심판대리권,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 공동대리권, 공인노무사의 고소·고발사건 진술권 요구 등 유사직역의 변호사 업무에 대한 침해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돌이켜 봤을 때 가능하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심정이다. 정말 이 구호대로 2년 전부터 변호사권익수호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생존권사수를 위해 대한변협이 적극 나섰다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하는 현재의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유사직역이 등장한 것은 그동안 변호사 숫자가 너무 적었고 그 문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고 싶지만 변호사를 만나기가 너무 어려웠다. 만난다고 하더라도 비싼 변호사 비용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많은 국민들이 제대로 된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유사직역이 등장하게 됐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로스쿨이 도입되면서 다양한 전문분야를 공부한 많은 변호사들이 배출되고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호사들의 등장으로 유사직역이 정리될 수 있는 기반이 구축됐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권익보호를 위하여 전문가로부터 제대로 된 법률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당연한 명제다.


요즘 젊은 변호사들 사이에 사시존폐 논란으로 흘려보낸 시간들에 대하여 '잃어버린 세월'이라는 냉소적이면서도 안타까움을 담은 말들이 오간다고 한다. 사시존폐 논란에 묻혀 버린 "밥은 먹고 삽시다"라는 구호가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아 모든 변호사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변호사가 무슨 생계를 걱정하느냐고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월 평균 수임건수 1.69건의 상황 속에서 내부적으로 체감하는 현실은 정말 참담하다. 생존권 사수는 아직 사회적으로 기반이 취약한 젊은 변호사들에게는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결코 늦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지금이라도 모든 변호사들이 화합하고 단결해 변호사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모든 시도를 막아내야 한다. 이제는 국민들이 부족한 변호사 수를 보충하기 위해 만들어진 임시방편의 노동력이 아니라 자격과 능력을 갖춘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적정한 비용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머니투데이 더엘(the L)에 서초동 변호사업계 소식을 전하는 이찬희 변호사(법무법인 정률)는 변협 사무총장, 서울변회 재무이사 등을 지냈다. 영화·글쓰기·술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좋아한다는 그는 무엇이든 하지 않고 아쉬워하기보다는 실패하더라고 도전해보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지향한다. 아주 얄팍한 정의감이 있어 사회적 약자나 소수를 괴롭히는 것을 참지 못한다. 




※이 글은 외부필자 제공으로 게재되는 내용이며 머니투데이 더엘(the L)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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