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자가 딸 재산을 상속하지 못하도록 막을 방법이 있나요

[조혜정의 사랑과 전쟁]법률상 양자의 부모에 대한 상속권

조혜정 변호사 2016.11.01 12:29


Q) 사망한 딸의 호적을 정리하고 싶어서 문의드립니다. 얼마 전 사망한 딸의 재산을 정리하다보니 생각도 못한 문제가 있네요.

제 딸은 25년쯤 전 결혼을 했는데 결혼 후 몇 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어요. 검사를 해보니 제 딸의 문제 때문에 아이를 못 낳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사위가 아이를 간절히 원해서 입양을 하기로 하고 복지기관에서 돌이 채 안 된 남자아이를 데려와서 둘 사이에 낳은 아이로 신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열다섯살 쯤 될 무렵에 딸과 사위는 그만 이혼을 하게 되었고, 남자아이라 사위가 키운다고 데려갔습니다. 딸은 그 아이가 좀 자라면서부터 말을 안 듣고 고집이 너무 세서 못 키우겠다고 늘 얘기를 했고, 그 아이에게 정이 별로 없어서 이혼한 후에는 한 번도 안 만났습니다.

그 후 딸은 지금의 사위와 재혼해서 살다가 한 달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하늘나라로 가버렸습니다. 딸 명의로 10억짜리 빌라가 한 채 있어서, 사위와 제가 상속을 받으려고 했는데, 입양한 그 아이가 딸의 친자로 되어 있어서 그 아이와 지금 사위가 상속인이고 저는 상속을 못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너무 기가 막혀서 그 아이는 제 딸의 핏줄도 아니고 지금은 연락도 끊겼는데 그게 말이 되냐고 했더니 제가 상속인이 되려면 그 아이가 딸의 호적에서 빠져야만 된다고 하네요. 구청공무원이 그 아이가 딸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오면 정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그 아이를 딸의 호적에서 정리할 수 있는지 알려주세요. 그 아이는 제 딸과 피 한 방울 안 섞였고 10년 전에 인연이 끊긴 생판 남인데, 그 아이가 제 딸이 고생고생해서 모은 재산을 가져간다니 너무 억울합니다.

A) 자식을 앞세우신 선생님 마음이 얼마나 힘드실지,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 선생님 대신 따님 재산을 상속한다니 얼마나 기가 막히실지 선생님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정말 너무나 안타깝게도 이제는 따님의 양자를 따님의 호적(지금은 호적제도가 없어지고 가족관계등록제도로 바뀌었으니 이후에는 가족관계등록부라고 칭하겠습니다)에서 삭제할 수 없고, 그 아이가 따님의 재산을 상속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 아이가 따님의 친자는 아니지만 법률상 양자로 인정되는데, 양자도 양부모의 재산에 대한 상속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청공무원이 그 아이가 딸의 친자식(법률용어로 친생자라고 합니다)이 아니라는 판결(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판결)을 받으면 가족관계등록부를 정리할 수 있다고 했다고 하는데, 그건 그 공무원이 정확히 알지 못하고 한 이야기입니다. 보통은 친생자가 아닌데 가족관계등록부에 친생자라고 기재되어 있을 경우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판결'을 받아서 가족관계등록부 기재를 정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딸이 결혼 안 하고 자식을 낳으니까 딸의 부모가 손주를 마치 자기 자식인 것처럼 호적에 올렸던 경우입니다. 혼전출산이 엄청난 불명예였던 예전에는 가끔 있었던 일이고 드라마에도 종종 나오지요. 이런 경우에는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판결로 가족관계등록부를 고치면 됩니다.

하지만 아이를 입양하면서 입양한 사실을 숨기려고 친자로 출생신고를 한 경우는 다릅니다. 우리 법원은 이런 출생신고는 입양신고를 한 것으로 해석해서 입양의 효력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형식상 친생자로 신고하긴 했지만 실질적인 의사는 양친자관계를 설정하려는 것이었으니까 그 의사를 중시해서 양친자관계는 성립한다고 봐주고 형식상의 잘못은 좀 눈감아주자는 겁니다. 이런 법원의 입장을 따르면 그 아이가 따님의 친생자는 아니지만 법률상 따님과 그 아이는 양모자 관계가 성립한 것입니다.

일단 양친자관계가 성립하면 그 관계를 정리하는 방법은 '파양(罷養)'밖에 없고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청구로는 정리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법원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문제는 파양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은 양친자관계의 직접적인 당사자들인 양부모와 양자뿐인데, 양모인 따님이 사망했으니 이제 파양은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선생님은 '나라도 파양을 하면 안 되냐'고 묻고 싶으실 겁니다. 파양청구권 같은 신분상의 권리는 다른 사람이 대신 행사해줄 수가 없으니, 선생님이 따님 대신 양자를 파양하실 수는 없습니다. 안타깝지만 이제는 따님과 양자의 양친자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따님이 이혼하실 때 양자와의 관계를 정리하셨거나, 사망시 어머니에게 재산을 준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해두었더라면(이런 경우에도 양자는 유류분반환을 청구해서 원래 상속분의 1/2은 받을 수 있습니다만) 이런 상황은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말씀드리고 보니 뒤늦은 후회일 뿐입니다만.    


 

조혜정 변호사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차별시정담당 공익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머니투데이 더엘(the L) 등 언론에 칼럼 기고를 활발히 하는 등 대한변협 인증 가사·이혼 전문변호사로 16년째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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