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가 국민을 잡았다"

[이찬희 변호사의 '서초동 연가(戀歌)'] "테러방지법땐 발빠르던 변협…대통령 수사가능여부엔 침묵, 이해불가"

이찬희 변호사(법무법인 정률) 2016.11.04 10:46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로 국정을 농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가 3일 오후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사진=뉴스1


설마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을 때 황당함과 허무함을 느낀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나 50이 넘게 살면서 가장 황당한 설마를 꼽으라면 주저 않고 최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를 들 것이다. 이쯤 되면 헌법 제1조를 “① 대한민국은 교주공주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최순실로부터 나온다”라고 해석해야 한다는 탄식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설마했던 일을 현실로 만들어 전 국민에게 황당함과 좌절감을 안겨준 국정농단의 책임에 대하여 관련자 모두를 철저하게 수사해 그 위법행위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을 하여야 마땅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변호사로서 관심을 가지게 된 부분은 '대통령의 재직 중 형사불소추를 규정한 헌법 제84조와 관련해 과연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가능할까'였다. 법무부장관이 국회 법사위에 출석해서 위 조항의 '소추'에는 수사가 포함되기 때문에 대통령을 수사할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다수설이라고 발언하면서 논란이 제기됐다.

그러나 국내 헌법학자 20명 중 19명이 재직 중 '소추'는 '소송의 제기와 진행'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 역시 수사대상이 된다는 의견을 냈다는 보도와 국내 헌법·형법학자 72%가 수사할 수 있다고 본다는 보도가 연이어 나왔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도 대통령도 성역없이 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변호사로서 생각해보면 일본이나 미국 등 외국의 예를 비춰 봐도 대통령일지라도 필요하다면 수사가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헌법 제84조의 취지에 따라 형사 소추는 퇴임 이후에 하더라도 사안을 철저하게 수사해서 과연 우리 나라가 비선에 의해서 움직이는 국가였던가라는 국민들의 의문을 명확하게 풀어줄 수 있어야 한다.

수사나 재판은 모두 신속을 생명으로 한다. 문제가 발생한 초기에 증거를 수집하고 사실관계를 조사하지 않으면 나중에 수사 자체가 무의미해 질 수 있다. 임기가 끝난 후에 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증거인멸의 시간과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다. 오죽하면 대통령마저도 수사를 받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하지 않았는가.

아쉬운 것은 이 문제에 대해서 대한변협이 정쟁에 이용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침묵하고 있는 중에 서울변호사회가 먼저 의견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최순실 등 비선에 의한 국정농단은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평가를 할 것이 아니라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것이 국민들이 바라는 변호사단체의 제대로 된 기능이고, 우리 국가와 사회가 세속주의의 풍랑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할 때 당당하게 의견을 발표하면서 법치주의의 등대역할을 했던 선배변호사들을 보면서 법조인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던 후배들이 바라는 진정한 변협의 모습일 것이다.

지난 번 테러방지법 때는 회원들의 의견수렴도 거치지 않고 그렇게 무리하게 하루 만에 여당이 원하는 내용대로 의견서 제출했던 대한변협이 이런 중차대한 법치주의의 수호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침묵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변호사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를 혼란에 빠트린 대통령의 불통만큼이나 현재 대한변협의 불통이 심히 우려스럽다.


머니투데이 더엘(the L)에 서초동 변호사업계 소식을 전하는 이찬희 변호사(법무법인 정률)는 변협 사무총장, 서울변회 재무이사 등을 지냈다. 영화·글쓰기·술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좋아한다는 그는 무엇이든 하지 않고 아쉬워하기보다는 실패하더라도 도전해보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지향한다. 스스로를 아주 얄팍한 정의감이 있어 사회적 약자나 소수를 괴롭히는 것을 참지 못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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