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리사가 변호사 직역침해? 적반하장격"

[인물포커스]오규환 대한변리사회 회장

황국상 기자 2017.02.05 12:04
오규환 대한변리사회 회장 / 사진제공=대한변리사회

"변호사들이 변리사들의 영역을 침범한 것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무리하게 시장에 진입하려는 시도를 멈춰야 합니다."

오규환 대한변리사회 회장(사진)은 머니투데이 더엘(the L)과의 인터뷰에서 "변리사와 변호사와의 오랜 갈등은 변호사들이 변리사들의 영역에 진입했기 때문"이라며 "변리사들에게 직역침해를 운운하는 것은 적반하장 격"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치러진 대한변호사협회장 선거에서 김현 신임회장 당선자는 '유사직역과의 전쟁선포'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변호사들이 담당하는 분야에 변호사 이외의 자격사 등이 법조분야에 진입하는 것을 저지하겠다는 얘기다. 직역갈등은 매년 1500여명의 변호사들이 배출되는 반면 거시적 경제둔화로 양질의 신규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지면서 더 첨예화됐다.

'유사직역'이라는 표현 자체가 '사이비'와 비슷한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 이는 변호사들이 여타 자격사를 폄훼하기 위해 만든 단어다. 변리사 뿐 아니라 세무사, 행정사, 노무사 등이 변호사들과의 직역갈등을 겪고 있다.

◇'김승열 변호사' 제명으로 재점화된 직역갈등
변리사 측과 변호사 측의 갈등은 지난해 변리사법 및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작업을 통해 변호사들에게 자동으로 자격을 부여하던 관행이 중단되는 과정에서 불거진 후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던 터였다. 하지만 지난해 말 대한변리사회 징계위원회가 변호사 측을 대변해 온 김승열 전 대한특허변호사회 회장(변호사)을 제명하기로 결정하면서 갈등이 재차 부각됐다.

대한변협 등 변호사 단체에서는 해당 징계결정을 비난하고 오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강도높게 대응하고 있다. 오 회장은 "김 변호사의 제명은 그가 여러 차례 다양한 활동과 인터뷰 등을 통해 변리사회와 변리사 직역자체를 폄하하는 등 행위를 해온 데 따른 것"이라며 "변리사 업무영역 축소를 위해 변호사 단체가 의도적으로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다.

변리사회가 문제삼은 김 변호사의 발언은 "변리사는 법률 전문성이 부족하고 소송대리권이 없어 (업무범위가) 특허출원 단계에 그칠 수밖에 없다" "소송전문가가 아님을 인정하고 소송대리권을 운운하며 국민들의 재판받을 권리를 훼손하는 행위를 중단하라"는 등 내용이다. 

이에 오 회장은 "변리사들의 업무는 특허 등 지식재산권의 출원 이전은 물론 출원 이후에까지도 당연히 미친다"며 "소송에 있어서도 이미 법에 의해 심결취소소송에 대한 소송대리권을 변리사가 행사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특허 등 지식재산권 관련분쟁은 크게 심결취소소송과 침해소송으로 나뉜다. 심결취소소송이란 특허심판원의 처분에 불복해 제기하는 소송으로 해당 지재권의 권리범위나 무효여부, 등록거절 등의 처분에 불복한 이가 소송을 통해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침해소송은 지재권을 보유한 이가 본인의 권리를 침해한 이를 대상으로 침해행위를 금지토록 하거나 손해배상 등을 청구하는 내용의 소송을 이르는 용어다. 

변리사 측과 변호사 측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부분이 바로 이 '침해소송'에 대한 부분이다. 변리사법 제8조(소송대리인이 될 자격)는 "변리사는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상표에 관한 사항의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 규정에서 말하는 '소송'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런 세부 규정이 없다. 이에 변리사 측은 현재 이미 수행 중인 심결취소 소송에 대한 대리행위 외에도 침해소송에 대한 대리까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변호사 측은 이를 직역침해 행위라고 비난하고 있다.

오 회장은 "변리사법 제8조의 문항 뿐 아니라 그 어느 법령에서도 변리사가 소송대리를 할 수 있는 소송이 '심결취소소송'에 한정된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법규정을 문리적으로 해석할 때도 그렇고 제3자가 봤을 때도 이를 '심결취소소송'으로 한정할 근거가 없음에도 변호사 측이 무리하게 견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변리사가 변호사보다 침해소송 수행능력도 우수"
변호사 측은 변리사 등 전문자격사들의 업무가 과거 변호사들이 희귀했을 때 임시방편으로 만든 직역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이들의 업무영역이 확대되는 걸을 줄곧 경계해왔다. 이에 오 회장은 "변호사들이 법률분야에서의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라면 변리사들은 산업재산권에 특화된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라며 "변호사들의 주장은 전문의 제도를 없애고 일반의만 남기겠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현재 변리사들의 진입이 허용되지 않고 있는 침해소송에 있어서도 변호사들보다 되레 역량이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오 회장은 "지재권 침해소송을 제대로 다루려면 과학기술에 대한 소양과 특허법 등 특허관련 실무, 그리고 민법과 민사소송법에 대한 지식이 전부 필요하다"며 "변리사 시험에는 침해소송에 필요한 이 3가지 부문의 과목이 모두 필수과목으로 지정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 측은 로스쿨 제도의 도입으로 이공계 출신인재의 법조계 진출이 많아지고 있으니 변리사 자격부여 요건을 너무 엄격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며 "하지만 변호사 측의 주장은 로스쿨 출신 변호사 중 의사나 회계사 자격 보유자가 있다는 이유로 전체 변호사들에게 의사·회계사 자격을 주자는 것과 다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매년 배출되는 1500여명의 변호사 중 이공계 출신이면서 시험과목으로 지식재산권법을 택해서 합격한 사람은 1%가 채 안된다"며 "이공계 전공 출신자가 로스쿨에 진학해서 변호사시험 선택과목으로 지재권법을 택해 합격한 사람이거나 변리사 시험에 별도로 응시해 합격한 이가 아니면 변리사 자격을 부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오규환 대한변리사회 회장 / 사진제공=대한변리사회

◇"직역통합 주장, 전문화 시대에 역행하는 것"
변호사 단체 측이 제시하는 장기적 직역갈등 해소방안 중 하나가 직역통합이다. 특정 전문분야 자격사들에게 일정 절차를 거쳐 '변호사' 자격을 부여하고 해당 자격사 선발시험은 폐지하도록 해 '변호사'로 다양한 직역을 통합하자는 얘기다. 하지만 오 회장은 이마저도 변호사들이 자기들의 일자리 창출만 염두에 둔 이기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직역통합을 제안한 자체가 전문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반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며 "원시시대 주술사가 의료와 정치, 종교 등을 다 다뤘지만 사회가 발전하면서 각 영역이 별도의 전문직역으로 발달해왔는데 이를 다시 주술사로 합치자는 주장과 뭐가 다르냐"고 반문했다.

또 "직역갈등의 출발은 자기네 밥그릇을 챙기려는 변호사 업계가 타 직역의 업무를 침범해 들어가는 데서부터 출발했다"며 "전문자격사 제도의 취지를 살려 각자의 전문성에 맞는 역할만 수행토록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한편 변리사와 변호사 사이의 직역갈등은 크게 변호사에 대한 변리사 자격 자동부여 건과 변리사의 침해소송 대리가능여부 등 2가지에서 발생했다. 이 중 변리사 자격 자동부여 건은 지난해 변리사법과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으로 일단락됐다.

남은 것은 지재권 침해소송에서 변리사들의 대리권을 인정해줄 것인지 여부다. 입법적으로 이를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진전은 없었다. 변리사법 제8조에 명시적으로 침해소송 수행가능 규정을 넣으려는 움직임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과거 17대 국회 때부터 현재까지 관련법안이 상정됐으나 변호사 측의 반발로 거듭 무산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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