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뉴스

"보호받지 못하는 근로관계 여전히 많아, 적극대응 필요"

[인물포커스]백화점 위탁판매원 '근로자' 판결 이끌어낸 공성수 변호사(법무법인 온세계)

황국상 기자 2017.02.15 15:31
공성수 변호사(법무법인 온세계) / 사진=황국상기자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애매한 형태의 고용관계에서 고통을 받으면서도 눈 한 번 꾹 감고 참고 넘기자는 식으로 살아가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소송의 문턱은 생각하는 것만큼 높지 않습니다. 적극 대응해서 내 권리를 찾아야 합니다."

공성수 변호사(48·사진, 법무법인 온세계)는 머니투데이 더엘(the L)과의 인터뷰에서 "법률지식이 없고 소송제도가 낯설다는 등 이유로 제대로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며 "약자를 배려하는 제도도 잘 만들어져 있는 만큼 노동·법률 전문가를 통해 자신의 소중한 권리를 꼭 지키기 바란다"고 말했다.

◇백화점 위탁판매원의 '근로자' 지위 얻어낸 첫 판결 이끌어내
공 변호사는 최근 백화점에 파견돼 넥타이·스카프·가방 등 잡화류를 판매하는 위탁판매원들이 해당잡화를 수입·제조·판매하는 A사를 상대로 퇴직금을 청구한 소송에서 원고들을 대리해 상고심에서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이번 판결은 '특수한 형태의 근로종사자'로 취급되던 백화점 위탁판매원에 대한 '근로자' 기준을 새로 세운 판결로 평가된다.

원고들은 당초 A사의 영업부 정규직으로 근무하면서 국내 각지의 주요 백화점에 파견돼 A사의 제품을 판매해왔다. 이들은 2005년을 전후한 시점에 A사 측의 요구로 일괄 사표를 제출한 후 고용계약이 아닌 판매용역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원고들은 여전히 A사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종전과 같은 업무를 수행하다가 퇴직했다. 원고들은 회사에 퇴직금을 청구했으나 거절당했고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회사 측은 원고들이 정규직 근로자가 아니었고 백화점 매출에 비례한 수수료를 받는 개인사업자 자격을 갖는 계약직에 불과하다고 항변했다. 퇴직금을 수령할 권한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원고들이 제기한 소송은 1심에서 승소했으나 2심에서 패소했다. 처음 소송에 참가했던 47명의 원고들 중 일부는 2심 패소 후 낙심해 이탈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머지 43명의 원고들과 공 변호사는 끝까지 회사 측과 법리다툼을 벌였고 원심 파기환송 판결을 이끌어냈다. 대법원은 "원고들을 비롯한 판매원들은 A사와 판매용역계약을 체결해 그 계약의 형식이 위임계약처럼 돼 있지만 그 실질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 관계에서 A사에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많다"며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원고들은 엄연한 근로자로서 퇴직금을 수령할 권한이 있다는 판단이다.

소송이 제기된 지 4년만의 승소다. 공 변호사는 "'원고들에게 돈을 주느니 그 돈을 변호사에게 주겠다'던 A사측은 이번 대법원 판결에 승복하지 않고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원고들과 다툴 예정이라고 한다"며 "그럼에도 원고들은 길게는 10년 이상 몸담은 회사에 여전히 애정을 갖고 있고 A사가 이번 패소로 이미지에 타격을 안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한다"고 전했다.

◇"보호받지 못하는 노사관계 여전히 많아, 적극대응 필요"
이번 경우에는 백화점에 파견나간 위탁판매원들이 승리했지만 백화점 관련한 근로관계에서는 여전히 모호한 점이 많다는 평가다. 대표적인 경우가 회사와 말단직원 사이에 중간관리자를 두고 있는 형태다. 

공 변호사는 "외관상 점주를 회사가 뽑고 점주에 대한 급여도 회사가 지급하지만 중간관리자가 매장에서 근무하는 이들을 별도로 계약직 형태로 채용하는 방식"이라며 "실제로 사용자 측이 많이 활용하는 노동사용의 방식이지만 말단직원에 대한 관리권한도 실질상 사용자가 행사하는 것인 만큼 법적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8월말 기준으로 국내 임금노동자 총 수(1962만7000명) 중 기간제나 한시제·시간제 등 비정규직의 수는 644만4000명에 달한다. 서비스직이나 판매직 종사자의 수만 155만6000명에 달하고 기능·기계조작 종사자와 단순노무 종사자의 수도 각각 106만5000명, 202만2000명에 이른다. 각종 사회복지 시스템도 대개 정규직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비정규직은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공 변호사는 "사용자 측은 이윤창출을 위해 새로운 근로형태를 계속 만들어가는 반면 다수 비정규직 근로자는 근로관계에 대한 법적지식이 부족하거나 '참는 게 마음 편하다'는 식의 태도 등으로 권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회사는 시스템을 동원해 대응하는데 근로자들은 개인 자격으로 맞서는 경우가 많아 초반부터 기가 죽거나 생계유지 등 현실적 이유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또 "시간제·단시간 근로자의 경우 손해금액도 50만~60만원대에 불과한 경우도 많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포기하고 넘겨버리자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잦다"고 아쉬워했다.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면서 구두로 '너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다'라고 구두로 얘기를 하거나 '퇴직금이나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좋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는 등 부당노동행위는 허다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공 변호사는 "편의점에서도 주5일 근무할 때 하루치 휴가를 주거나 그에 해당하는 수당(주휴수당)을 별도로 얹어줘야 함에도 아르바이트생들이 이 제도에 대해 모르거나 알아도 대충 합의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주휴수당이 포함된 임금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주1일씩 쉬면서 주휴수당을 안받는 옆 가게 아르바이트생과 임금이 같다는 등 변칙적 형태로 제도를 운용하는 곳도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본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적극적 마음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한 번 손해 보는 게 마음이 편하다'는 식의 태도는 단지 자신의 권리만 없애는 게 아니라 내 이웃의 권리가 무시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는 과감하게 법과 시스템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공 변호사는 "본인이 처한 현실이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관심을 가지고 살피고 내가 찾을 수 있는 권리가 무엇인지를 알아봐야 한다"며 "실제 소송이 벌어지면 변호사가 소송관련 모든 일을 다 대행하고 선임비용도 생각보다 부담이 적으니 노동법률 전문가를 최대한 활용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공유하기

1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