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가능한 일이야…박근혜 정부에서는" 국정농단 민낯

김종훈 기자 2017.02.20 19:19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인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스1

최순실씨(61·구속기소)가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 등 측근을 부려 국정을 농단한 정황이 '고영태 녹취록'을 통해 낱낱이 드러났다. 최씨는 돈줄을 해외 돌리는 일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던 것으로 밝혀졌다.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58·구속기소)의 15차 공판에서 검찰은 김수현 전 고원기획 대표가 녹음한 '고영태 녹취록' 원본파일 일부를 공개했다. 이중 2015년 4월7일 녹취록에서는 고 전 이사가 "VIP는 이 사람이 없으며 아무 것도 못한다"며 최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임을 강조하는 내용이 있었다.

이 녹취록에서 고 전 이사는 "진짜 뭐 하나 결정도 글씨 하나, 연설문 토씨 하나 수정을 보고 새벽 늦게까지도 옷도 무슨 옷을 입어야 하고…"라고 말했다. 의상부터 연설문 작성까지 최씨의 확인이 없으면 박 대통령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취지다.

이어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VIP는 다른 사람 만나서도 '소장님 뭐했어', '소장님 뭐했대요' 한다. 일일이 사사건건 한 시간에 두세 번씩 전화통화한다"고 했다. 고 전 이사 등 측근들은 최씨를 '소장님' 또는 '회장님'으로 불렀다고 증언했다.

또 고 전 이사는 "보좌관들도 비서들을 꽂아놓은 게 아니라 그냥 친하니까 '너 비서해' 하고 전혀 비서 (업무)에 대해 모르는 애들 꽂아놓고"라며 "헬스장 트레이너를 비서로 꽂아놨으니 거기서 무슨 일을 보겠냐"라고 발언했다. 여기서 '헬스장 트레이너'는 윤전추 행정관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고 전 이사가 최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보좌관에게 "소장이 나랑 차은택이랑 계속 연결시키려고 하는데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하자 최 전 보좌관은 "VIP가 굉장히 신임한다고"라고 답했다. 이에 고 전 이사는 "VIP가 신임해봤자 쳐낼 사람들은 다 소장 한 마디만 듣고 쳐낸다"며 "VIP가 믿을 사람은 소장밖에 없다"고 잘라말했다.

지난해 4월20일 녹취록에선 고 전 이사가 김 전 대표와 국세청장 인선을 논의하는 대화가 들어있었다. 고 전 이사가 "또 중요한 '오더'(Order)가 있는데 국세청장을 하나 임명하라고 한다"고 말문을 열자 김 전 대표는 "국세청장은 아는 사람이 없잖아요"라고 답한다. 그간 법정에서 나온 증언에 비춰볼 때 '오더'는 최씨가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

이어 고 전 이사는 "잘못 건드렸다가는 이 세관 조직이 정말 탄탄하다"며 국세청장 인선을 통해 세관당국을 장악하려 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김 전 대표가 "시험(행정고시) 기수별로 돼 있어서 그렇다"고 하자 고 전 이사는 "그걸 깨려고 하는데 반대파들 껴서 한번 해야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다른 전화통화에서 고씨 측근인 류상영 더운트 부장이 김 전 대표에게 "국세청장이라고 하는데 모르겠다. 그 사람이 국세청장으로 가면 말도 안 되는 인사지만 우리가 한 게 맞는 것"이라며 "또 한편으로는 이 정부에서는 다 가능한 일이야. 박근혜 정부에서는"이라고 놀란 기색을 보였다. 류 부장은 "내가 '수구꼴통' 보수였는데 보수라는 것에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며 "회장님과 (고)영태가 나한텐 인생의 이데올로기를 바꿔주는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말도 했다.

지난해 2월29일 녹취록에서 박헌영 K스포츠재단 과장은 "비덱이라고, 회장님 생각은 뭔지 알겠는데 독일로 돈을 따로 빼고 싶어하는 부분이다"라고 김 전 대표에게 말했다. 이 시기 최씨는 박 과장 등을 통해 SK에 K스포츠재단 지원금을 비덱스포츠에 직접 송금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SK는 비덱스포츠는 실체가 분명치 않은 회사라는 이유로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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