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인식 놔두고 판결문 타자치는 모습, 쏙이 탄다, 쏙이" IT 전도사 된 고위법관

대담=김익태 사회부장, 정리=양성희 기자, 사진=김창현 기자 기자 2017.03.06 05:00
강민구 법원도서관장/사진=김창현 기자


나이가 몇 살이든 ‘영감님’으로 불리는 직업군이 있다. 판·검사다. 원래 영감은 조선 시대 고관을 지칭하는 말이었는데, 일제강점기부터 법조인 등을 높여 부르는 말로 굳어졌다. 단연 보수적이고 딱딱한 이미지가 녹아있다. 그 중에서도 ‘서울대 출신, 50대 남성, 고위 법관’은 대법관 임명 때마다 도마에 오르는, ‘영감의 정석’으로 꼽힌다.

그런데 어느 서울대 출신, 50대 남성, 고위 법관은 20대 초반 공익근무요원과도 스스럼없이 차 한잔을 나누고 부하 직원과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각종 업무는 에버노트와 구글 드라이브로 처리하며 스마트폰을 법원 내에서 가장 ‘스마트’하게 쓰기로 유명하다. 후배 법관들에겐 손수 미역국을 끓여 먹이기도 한다. ‘IT(정보통신) 전도사’, ‘강줌마(강+아줌마)’ '스티브강스(스티브잡스+강)' '디지로그 판사' 등으로 불리는 강민구 법원도서관장(59·사법연수원 14기) 얘기다.

#. “원두커피, 발효차, 보이차, 녹차 다 있어요. 뭐 드실래요?” 지난 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 내 법원도서관장실에서 만난 강 관장은 인터뷰에 앞서 보이차와 녹차를 손수 우려 건넸다. 2005년부터 매년 경남 하동에서 일 년 치 차를 만들어온 뒤 자신을 찾는 이들과 나눠 마시는 일을 하나의 낙(樂)으로 삼고 있다.

그가 중요시하는 ‘나눔’과 ‘소통’은 차 한잔에서부터 시작된다. 창원지법원장 근무 당시 400명, 부산지법원장 재직 시절 600명의 직원 모두와 티 타임을 가졌다. 때론 조정이 필요한 민사재판 당사자들과도 차 한잔을 나눈다. 강 관장과 함께 근무했던 동료 판사들은 “관장님 방에 가기 전에 화장실을 꼭 들르라”고 조언한다. 차를 계속 우려내 여러 잔 마시며 대화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기자가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자 강 관 장은 차 한잔 마시고 시작하자며 노트북을 덮었다.

차를 석 잔쯤 비우자 강 관장이 바빠졌다. ‘IT 전도사’답게 스마트폰을 펼쳐 각종 시연에 나섰다. 경상도 사투리 억양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활자로 풀어준 에버노트의 음성 인식 기능을 가장 먼저 알렸다. “이렇게 마이크에 대고 말만 하면 애플리케이션이 알아서 활자로 바꿔주는데 이걸 모르고 아직도 사람들은 타자를 친다”며 “쏙이 탄다, 쏙이(속이 탄다, 속이). 손가락이 필요 없는 세상이에요”라고 가슴을 쳤다. 강 관장은 이 기능을 이용해 지난 3년간 총 12권의 책을 만들었다. 창원지법에서의 일화를 묶은 ‘창원이야기’, 부산지법의 소식을 담은 ‘부산법원통신’이 그것이다.

강 관장은 이어 구글 드라이브, 구글 번역 애플리케이션, 구글 포토 검색 활용법 설명을 이어갔다. “스마트폰은 무한정한 외장 두뇌인데 이를 전화기, 검색용으로만 쓰는 사람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며 “1억짜리 기계를 왜 1만원짜리로 쓰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참말로 미치겠어서 목 놓아 (주변에 사용법 등을) 나누고 있다”고 했다.

그의 진심이 통한 걸까. ‘혁신의 길목에 선 우리의 자세’란 주제로 한 강연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수 86만건(3월5일 오전 기준)을 넘어섰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어떻게 해야 디지털 문맹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쉽게 풀어낸 내용이다. 부산지법 고별강연이었을 뿐인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입소문이 난 덕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강민구 법원도서관장이 인터뷰 중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활용법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사진=김창현 기자


#. 그가 IT에 빠지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다. 1985년 법무관 훈련을 마치고 육사 교수부 법학과 교수로 근무한 때부터다. 더미터미널(데이터를 입출력하는 단말기)을 다루면서 정보화 기기에 관심이 생겼다. “태어나서 처음 본 단말기를 보고 ‘이게 뭐요’ 물으니 ‘컴퓨터’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거기에서 원시적인 워드프로세서가 있었는데 치면 밀리고 지우려면 땅기는 장면을 봤을 때 이건 거의 기적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강 관장의 IT 사랑은 날로 깊어졌다. 판사로 임관한 1988년, 주변 친구들은 현대차 ‘엑셀’이나 대우차 '르망'을 샀지만 그는 같은 돈으로 컴퓨터를 구입해 업무에 썼다. 법원에 컴퓨터가 들어온 건 1991년인데 그보다 3년을 앞서 갔다. 당시에도 그는 ‘전도사’ 역할을 했다. 컴퓨터로 간단하게 손해배상 계산표를 만들어 판결문 작업을 하던 강 관장을 보고 19명의 동료 판사들이 컴퓨터를 구입했다고 한다.

강 관장은 사법부 정보화 역사와 흐름을 같이 했다. 1997년부터 2년간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으로 근무하면서 한국형 법률정보 시스템인 ‘종합법률정보 1.0 버전’을 총괄 기획해 혁신적 변화를 이끌어 냈다. 이를 토대로 사법 정보화가 진척돼 전자소송이 활성화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2010년 특허소송부터 이듬해 민사, 행정소송까지 순차적으로 도입된 전자소송 이용률은 어느덧 전체 소송의 60%를 훌쩍 넘겼다.

강 관장은 1999년 미국 국립주법원 행정센터에서 사법 정보화 연수를 거친 경험을 토대로 2003년 ‘함께 하는 법정’이란 단행본을 냈는데 이는 전자소송의 초석이 됐다. 이달 출범할 사법정보화 전략위원회의 위원장도 맡게 됐다. 수준 높은 재판을 위한 ‘더 나아간 혁신’이 그의 고민이다.

강 관장을 비롯한 판사들의 노력이 보태져 우리나라 사법 정보화 수준은 세계 최상위권에 도달했다. 세계은행 평가에서 사법 정보화 부문은 7년째 인구 1000만명 이상 국가에서 부동의 1위였고, 올해 평가에서는 인구 수와 상관 없이 확실한 1위가 됐다는 것이 강 관장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그는 나아갈 길이 많이 남았다고 본다. 특히 판결문 타이핑 작업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상하이 법원을 찾았을 때 받은 충격을 예로 들었는데 그곳 법정엔 속기사가 없고 음성인식 방법을 사용해 재판을 기록한다고 전했다. 속기사는 오·탈자만 잡아준다. 강 관장은 “판사들을 타이핑에서 해방시키면 20년 전 종합법률정보 시스템 도입에 이어 ‘제2의 혁신’이 될 것”이라며 “음성인식을 이용해 판결서 초고 작업을 하라고 권하면 후배들이 (신기해서) 뒤집어 진다”고 말했다. 보안을 염려하는 일각의 시선에 대해선 “클라우드가 특정 개인을 인식해 정보를 빼내거나 공개하지 않는다”며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국과 (관련 문제를) 긴밀히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 사법 정보화와 역사를 같이 한 이의 평소 생활은 어떨까. 같은 법원에서 근무했던 이들은 입을 모아 ‘단체 카톡방’ 얘기를 꺼냈다. 강 관장은 가는 곳마다 구성원을 한데 모아 업무·소통용 단체 대화방을 만든다. 수십명이든 수백명이든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강 관장은 상대방의 직책, 직위에 상관 없이 모든 구성원의 전화번호를 먼저 물어 입력한다. 현재 79명의 법원도서관 식구들도 카톡방 한 곳에 모여 있다.

그는 카톡방이 족쇄가 되지 않기 위해 철저한 6가지 원칙도 세웠다. 조직원들은 아무 때나 기관장과 간부에게 메시지를 보내도 되지만 기관장은 업무 시간 중에만 글을 남긴다는 것, 알림을 끄고 무음·진동으로 해놓고 하루에 한 번만 확인해도 된다는 것 등 이다. 강 관장은 “이처럼 선용(善用)하면 한 조직이 독수리 오형제처럼 편대비행을 할 수 있게 된다”며 “쓸 데 없는 대면보고가 줄어들고 과별 칸막이가 없어지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단체 카톡방은 가족·친척 사이에서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강 관장과 그의 아내, 두 딸과 아들이 속한 ‘5인 가족방’, 친가 남매끼리 꾸린 ‘6남매방’, 처가 식구 17명이 모인 ‘장패밀리방’ 등으로 화목함이 배가 됐다고 한다.

#. 그가 단체 카톡방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활발한 ‘나눔’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강 관장은 “정보는 누가 움켜쥘 수 있는 게 아니라 나눠야 하는 것”이라며 “인터넷 시대에 개인이 알고 있는 정보는 몇만분의 1도 되지 않을 텐데 움켜쥔다는 것은 오만”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보를 풀수록 벽돌이 쌓이듯 견고해진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철저히 “좋은 건 나눠야 한다”는 주의다.

그가 나누는 건 IT뿐만이 아니다. 좋은 식재료, 취미로 삼은 다도, 일상이 된 108배 등을 쉴 새 없이 전하고 산다. ‘강줌마’로 불리는 강 관장은 조미료를 직접 만든다. 멸치, 마른 새우, 표고버섯 가루, 미역귀, 다시마를 갈아 만든 조미료로 끓인 미역국은 창원·부산 생활 당시 많은 이들의 감탄을 낳았다. ‘법원장님이 끓여준 미역국’은 화젯거리로 떠올랐다. 또 함께 근무했던 배석판사는 강 관장을 따라 다도 체험에 나선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해왔다. 강 관장이 2002년 건강 회복차 시작한 108배는 이후 서울고법에서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강 관장은 2시간 가까운 인터뷰가 끝나는 순간까지 남은 차를 계속해서 우려줬다. 그러면서 그는 인터뷰 말미 ‘아날로그 감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디지털 시대에도 결국 근본은 아날로그라는 것이다. 그는 “아날로그는 지력(智力)이자 생각 근육”이라며 “이것이 뒷받침 되지 않은 인공지능은 사상누각”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세 자녀 교육 방식에서도 적용됐다. 강 관장은 “아이들을 책방의 바다에 빠뜨리라는 게 저의 지론”이라며 “만화를 보든 추리소설을 읽든 대형서점에서 하루종일 놀게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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