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일본서 한 상속포기…효력 있을까?

[사봉관 변호사의 상속·가업승계 교실] 늘어나는 국제 이혼·상속…어느 나라 법 적용할지가 관건

사봉관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2017.03.22 02:11
아파트 단지 전경/사진=뉴스1


앞으로 국제 이혼·상속이나 해외교포들의 국내 재산에 관한 분쟁 등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재판의 관할권과 외국법원 결정·판결의 효력이다. 

대법원에서 결론이 났던 해외 거주 한국 국적 교포의 국내 상속재산과 관련된 분쟁을 소개한다.

재일교포 A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사업을 하다가 노환으로 사망했다. 배우자 ‘갑’, 장남 ‘을’, 차남 ‘병’이 있고 ‘갑, 을, 병’은 모두 한국 국적을 가진 상태로 일본에서 거주했다.

◇일본법원에 했던 상속포기신고기간 3개월 연장신청의 효력문제

갑, 을은 도쿄가정재판소에 상속포기기간 3개월 연장신청을 하고 그 연장기간내에 상속포기신고를 했다. 일본법원은 해당 상속포기신고를 수리했다. 한편 병은 A의 한국 소재 X부동산에 관해 상속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쳤다. 

그러자 갑, 을은 일본에서 한 상속포기가 국내에는 효력이 없어 X부동산에 관해선 여전히 A의 상속인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병을 상대로 갑, 을의 상속지분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 말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병은 갑, 을의 상속포기는 유효하고 이를 취소할 사유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자신이 한국 소재 X 부동산을 단독으로 상속했다고 다투었다.

1심은 상속포기와 관련된 실질적 요건은 민법(제1019조 이하)에 따라야 하므로 피상속인인 A의 사망일로부터 3월이 경과한 갑, 을의 상속포기신고는 상속포기로서의 효력이 없다고 봤다. 일본법원에서 기간연장을 거쳐 상속포기를 했던 것을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일본에서의 '상속포기'와 '상속포기신고기간 연장신청' 모두 유효

그런데 2심과 대법원은 1심 판결을 취소하고 갑, 을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법원이 밝힌 이유는 다음과 같다. 

피상속인 A와 그 상속인들은 모두 한국 국적을 가진 채 일본서 거주해 왔고, A의 상속재산은 국내와 일본에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상속관계는 국제사법(國際私法: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의 법적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준거법을 어느 나라 법으로 할지에 관한 원칙을 담은 국내법) 제1조의 '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에 해당해 국제사법에 따라 준거법을 정해야 한다. 

국제사법에 따르면 상속에 관해선 사망 당시 피상속인(사망인)의 본국법(한국법)이 원칙이다. 하지만, 법률행위의 방식은 행위지법(일본법)에 의한 것도 유효하다. 

따라서 '상속포기'라는 '법률행위'도 마찬가지로 그 행위가 이뤄진 게 일본이라면 일본법에 의한 것도 유효하다. 그러므로 갑, 을이 일본법에 의해 도쿄가정재판소에 했던 상속포기신고는 그대로 모두 유효하다.

때문에 일본법원에 스스로 상속포기를 해 놓고 한국 부동산에 대해선 상속포기효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한 갑, 을의 주장은 국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상속포기는 신분권과 관련된 포괄적 권리의무의 승계에 관한 것으로서 행위지법(일본법)의 적용을 받는 법률행위"라고 판단했다. 즉 '상속포기'라는 법률행위를 원칙적으론 사망한 피상속인 재일교포 A의 본국인 한국법에 의해 해야 하지만, 일본법에 의해 일본법원에 한 것도 그대로 유효하다는 것이다. 

특히 사례에서 갑, 을이 일본 법원에 상속포기기간을 스스로 3개월 '연장'신청을 했던 것에 대해서도 한국 부동산에 대해선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그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상속포기나 그를 위한 3개월 연장신청이라는 법률행위가 둘 다 일본법에 의해서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연장신청에 대한 결정을 국내 가정법원으로부터 받을 것인지, 외국 가정법원으로부터 받을 것인지의 문제도 법률행위의 방식에 관한 것으로서 행위지법(일본법)에 의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상속 소송에서 재판관할권 어느 나라에 있는지도 중요해져

위와 같이 최근 가족법(친족, 상속법) 관련 소송에서 '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인지 여부, 즉 어느 나라 법으로 문제를 해결할지가 문제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동시에 다른 나라 법원의 판결이나 결정의 효력을 두고 다투는 경우가 많다. 국제 이혼·상속이 늘어난 탓이다.  

국제 이혼·상속 분쟁에서는 먼저 국내 법원에 재판권이 있는지, 즉 국제재판관할권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

위 사안에서 문제된 X 부동산은 A의 국내 재산이므로, 일견 국제사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A의 재산이 국내와 일본에 모두 소재해 있고 상속포기가 일본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민법 규정등에 따라 위 사안은 '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에 해당한다.

법원은 사건이 국내 법원과 실질적 관련 유무가 있는 지를 볼 때, "국제재판관할 배분의 이념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본다. 아울러 국내법 관할 규정을 참작해 국제재판관할권의 유무를 판단하되, 국제재판관할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해 판단한다.

국제재판관할에선 당사자 간의 공평, 재판의 적정, 신속 및 경제를 기한다는 재판 기본이념에 따르고 구체적으로 △소송당사자들의 공평, 편의 그리고 예측 가능성과 같은 개인적인 이익 △재판의 적정, 신속, 효율 및 판결의 실효성 등 법원과 국가 이익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

그리고 법원은 다양한 이익 중 어떠한 이익을 보호할 필요가 있을지 여부는 개별 사건에서 법정지(한국)와 당사자의 실질적 관련성 및 법정지와 분쟁이 된 사안과의 실질적 관련성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삼아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사봉관 변호사
사봉관 변호사는 2016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마지막으로 20년 판사생활을 마감하고 현재 법무법인 지평에서 '상속·가업승계팀장'을 맡고 있다. 로펌 내 'Elder Law 실무연구회'를 만들어 상속·가사 분야에 관한 활발한 연구활동도 하고 있다. 광주 대동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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