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L팩트체크] 철학자 한병철의 관객모독…'모욕죄'적용될까

번역가에 '잘못된 번역' 망신주기 등 일부 행동, 명예훼손 혐의 검토가능…'욕설' 등 심한 표현 없었으면 모욕죄 적용은 어려울 수도

유동주, 송민경 기자 2017.03.23 11:35
한병철/사진=뉴시스


독일에서 활동중인 한국인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기행에 가까운 저자 강연회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자신의 책 출판을 기념해 대형서점에서 열린 강연회에 일반적인 형식의 강연을 하지 않고 기괴한 행동을 하며 이에 일부 관객에게는 모욕적 언사를 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교수는 관객 일부가 항의하자 '(무료 행사임에도)강연료 1000원을 돌려주겠다', '떽떽거리지 말라', '입 다물어라' 등의 발언을 했다고 전해진다.

법전문가들은 한 교수의 행동에 대해 현재까지 전해진 현장 상황과 발언만으로는 형사처벌 적용대상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봤다. 다만 현장에서 관객이나 행사 관계자들에게 구체적으로 모욕죄에 해당할 언사를 했을 경우엔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성립을 검토해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 보도와 SNS 등으로 전해진 현장상황으로는 관객들에게 구체적인 '욕설'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형법에 규정된 모욕죄는 일반적으로 공공장소 등에서 다른 이가 보는 가운데 사람을 모욕하는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다. 사람에 대한 사회적 평가인 '외부적 명예'를 저하시키는 경우에 보통 모욕죄 성립이 인정된다.(대법원 2016. 10. 13. 선고 2016도9674 판결)

김운용 변호사(법무법인 나루)는 "한 교수가 관객들에게 화를 내고 일부에겐 모욕적인 발언을 했다고 해도 그 표현이 법원이 인정하는 모욕죄에 해당할 지는 검토해봐야 한다"며 "구체적인 경멸의 표현이나 욕설이 있어야 모욕죄에 해당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타인에 대한 경멸적인 표현에 대해 판례는 사회통념상 용인할 발언이면 모욕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한 교수가 한 발언들이 사회통념상 용인할 표현이라면 모욕죄 성립이 안 되고 구체적인 언행으로 모욕을 줄 경우엔 성립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필우 변호사(법무법인 콤파스)는 "개인에 대해서 구체적인 모욕에 관한 발언을 했으면 모욕죄가 되고 최근 모욕죄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기도 하다"면서도 "현재 전해진 한 교수의 발언만으로는 모욕죄가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호영 변호사 (법무법인 폴라리스)도 "관객으로서는 불쾌한 일이지만, 욕설과 같은 모욕죄에 해당할 정도의 언사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관객이 아닌 번역가에게 한 행동과 발언에 대해선 명예훼손죄에 대해 검토할만한 문제라는 의견도 있었다. 한 교수는 강연회에 동석하고 자신의 저서를 번역한 번역가에게 현장에서 독일어로 된 '개념'을 설명한 후 즉석 번역을 요구했다. 

이어 답을 듣고 "잘못된 번역"이라고 관객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줬다. 이에 대해 이소연 변호사(리인터내셔널)는 "번역가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볼 여지도 있다"는 의견을 냈다. 전해진 것만으로는 정확한 발언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전문 번역가의 '직업적 명예'를 훼손했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법원은 다음과 같은 사례에서 모욕죄를 부정했다.

△택시 기사와 요금 문제로 시비가 벌어져 112 신고를 한 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늦게 도착한 데 대하여 항의하는 과정에서 "아이 씨X!”이라고 말한 경우(대법원 2015. 12. 24. 선고 2015도6622 판결)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감사가 관리소장의 업무처리에 항의하기 위해 관리소장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야, 이따위로 일할래", "나이 처먹은 게 무슨 자랑이냐"라고 말한 경우, 상대방을 불쾌하게 할 수 있는 무례하고 저속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객관적으로 갑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모욕적 언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사례(대법원 2015. 9. 10. 선고 2015도2229 판결)

△임대아파트 분양전환과 관련해 임차인이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방송시설을 이용해 임차인대표회의 전임회장을 비판하며 "전 회장의 개인적인 의사에 의해 주택공사의 일방적인 견해에 놀아나고 있기 때문에"라고 한 표현이 전체 문언상 모욕죄의 '모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 사례.(대법원 2008. 12. 11. 선고 2008도8917 판결)

△골프 캐디들의 구직사이트 게시판에 특정 골프클럽의 운영상 불합리성을 비난하는 글을 게시하면서 클럽담당자에 대해 한심하고 불쌍한 인간이라는 등 경멸적 표현을 한 사안에서, 게시의 동기와 경위, 모욕적 표현의 정도와 비중 등에 비추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보아 모욕죄의 성립을 부정한 사례.(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8도1433 판결)

△"부모가 그런 식이니 자식도 그런 것이다"와 같은 표현으로 상대방의 기분이 다소 상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이 너무나 막연해 그것만으로 곧 상대방의 명예감정을 해하여 형법상 모욕죄를 구성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한 사례(대법원 2007. 2. 22. 선고 2006도8915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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