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전용 콘돔자판기를 환영합니다

김광민 변호사의 '청춘발광(靑春發光)'…현실에 맞는' 올바른 교육·사회적 논의' 할 때

김광민 변호사(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 2017.03.24 06:25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초등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어머니가 재혼을 해 양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부모님끼리도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5학년 때 전학을 갔고 연락이 닿지 않았다. 1년 쯤 지나 우연히 부모님 대화를 들었는데 그 아이가 양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그 아이에게는 두 살 어린 남동생이 있었는데 양아버지가 누나를 성폭행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다니다가 선생님까지 알게 됐다고 했다. 선생님은 경찰에 신고했고 양아버지는 잡혀갔다고 했다.


성관계가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했기에 성폭행이 무엇인지는 더더욱 몰랐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던 시절도 아니니 찾아볼 방법도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한 것이고 감춰야 하는 것 같았다. 터부(taboo)에 대한 반항을 즐겼던 철없는 개구쟁이 시절이라 부모님께 들을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전했다. 의도치 않게 2차 가해를 한 것이었다.


성폭행이 '억지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곧 아이들은 성폭행이 무어냐며 서로에게 묻고 다녔다. 개중에 좀 아는 녀석들은 으쓱해 하며 이러쿵저러쿵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속시원하게 설명하는 녀석이 없었다. 결국 한 친구가 수업 중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선생님. 성폭행이 뭐에요?" 질문에 대한 선생님의 답변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억지로 사랑하는 거야." 도대체 무슨 말인가? 억지로 사랑하는 것?


얼마 후 6학년 학급에서 성교육이 진행됐다. 5학년 때 까지는 받아본 적도 없었다. 자기들도 어설프게 주워들은 정보로 아는 척하던 친구들에게 주섬주섬 주워들은 것이 전부인, 무엇인가 김이 잔득 낀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던 '성', 그것을 선생님이 가르쳐 준다고 했다. 성별을 떠나 모든 아이들은 설레었다. 그런데 막상 선생님은 알아볼 수도 없는 그림을 보여주며 '이것이 아이가 생기는 방법'이라고 했다. 지금 떠올려 보면 자궁을 묘사한 그림이었을 것이다.


이후 6학년 전 학급에 단 한 명이었던 남자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질문을 받았다. 배운 것이 없으니 질문도 없었다. 남자 선생님은 "궁금한 게 많을 텐데, 편하게 질문해"라고 했지만 도무지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성관계에 대한 질문을 그 남자 선생님이 맡으셨던 것 같다. 여자 선생님은 성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야동'으로 알게되는 '성'…언제까지 감추기만 할 것인가


내가 성관계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교에 들어가서 였다. 포르노 테이프를 우연히 입수했다. 몇 번을 복사한 것인지 화면에서는 끊임없이 비가 내렸다. 하지만 전라의 남녀가 상상도 못했던 행위를 하는 것은 또렷이 보였다. 까까머리 중학생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알게 된 성관계는 왜곡된 욕망의 덩어리였고 여성은 그저 남성이 가진 욕망의 배출구였다. 그 때 알게 된 성관계에 대한 이미지는 한동안 지속됐다. 올바른 성관계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청소년들은 대부분 비슷한 경로와 방식으로 성에 대해 알아갔을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성을 감추려고만 했다. 강간을 '억지로 사랑하는 것'이라 가르치고 자궁 그림을 그려놓고 성관계를 설명했다. 때문에 청소년들은 어둠의 경로를 통해 얻은 성에 대한 왜곡된 정보들을 통해 스스로 성에대해 알아가야 했다. 어른들은 정작 침실에서는 그렇지 않으면서 입으로는 "성은 고귀한 것이다, 보호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간혹 구성애씨와 같이 쉽고 재미있는 성교육으로 성을 보다 친근하게 알려주고자 하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순결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는 못했다.


억지로 누른 결과… 성범죄 25분마다 1건 발생·성산업 규모 OECD 상위권 1~2위 다퉈


그 결과는 참담했다. 인간이 가진 가장 근본적인 욕망인 성욕은 억누른다고 눌려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억누르면 누를수록 더욱 왜곡된 방식으로 튀어나왔다. 한국에서는 25분마다 1건의 성범죄가 발생한다고 한다. 정확한 통계에 어려움은 있지만 한국 성산업 규모는 OECD 국가 중 1~2위 다툰다고 한다. OECD 국가 중 90%에서 성매매를 합법화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성매매가 불법인 한국의 성산업 규모는 놀라운 수준이다.


최근 청소년만 사용 가능하다는 콘돔 자판기가 등장했다. 어떠한 법률에도 청소년이 콘돔을 구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 청소년 보호법은 "청소년에게 음란한 행위를 조장하는 성기구 등 청소년의 사용을 제한하지 아니하면 청소년의 심신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우려가 있는 성 관련 물건"을 청소년유해물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동법 시행령은 "청소년이 사용할 경우 성 관련 신체부위의 훼손 등 신체적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물건, 청소년에게 인격 비하, 수간 등 반인륜적 성의식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물건, 청소년에게 음란성이나 비정상적인 성적 호기심을 유발할 우려가 있거나 지나치게 성적 자극에 빠지게 할 우려가 있는 물건"으로 청소년유해물건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청소년 보호법의 태도에 대한 평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동 법에 따르더라도 콘돔은 청소년유해물건이 아니다.


콘돔은 '청소년 유해 물건'이 아니다…필요한 것은 억압 아닌 '올바른 성교육'


그럼에도 지금까지 청소년들이 콘돔을 사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된 성교육을 실시하지도 않고 그저 억압하려고만 했다. 당연히 피임법 역시 알려주지 않았다. 청소년에게 성관계는 금기시된 행위인데 피임법을 알려주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인 것이었다.


여성가족부가 2014년 조사한 '청소년유해환경접촉 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들 중 5.3%가 성관계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성관계를 처음 경험한 평균 연령은 12.8세였다. 그리고 성관계 경험 청소년 중 9.1%가 성질환을 겪었고 임신을 한 경우도 있었다. 특히 임신을 한 경우 중 66.1%는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성에 대한 특성을 고려해 본다면 보수적으로 집계된 통계일 것이다. 때문에 현실의 수치는 더욱 높을 것이다.


'청소년의 성' 현실에 맞는 사회적 논의·합의 필요


청소년의 성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논의는 성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청소년에 대한 논의다. 청소년이 성적 주체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느냐의 논의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성을 억압하고자 하는 이들은 청소년들을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미숙한 존재로 인식한다. 때문에 그들에게 성은 감추고 억압해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청소년들의 성을 인정하자는 쪽은 그들을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하나의 인격체로 본다.


물론 모든 연령대의 아동·청소년에게 성을 허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연령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는 사회적 논의와 합의 사항이다. 그러나 지금 것 한국에서는 그 논의와 합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논의와 합의 이전에 현실은, 꾹꾹 눌러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수의 청소년들이 성관계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젠 마냥 꾹꾹 누르기만 하는 청소년의 성은 폐기되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청소년의 성이 이미 현실이라면 그들에게 올바른 성을 알려주어야 한다. 성관계 중 원하지 않는 임신을 방지할 방법도 알려주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청소년 전용 콘돔 자판기의 설치는 환영할 일이다.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이다. 청소년을 만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들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자신의 모습에 오늘도 힘들어한다. 생물학적 회춘은 불가능해도 정신적 회춘은 가능하리라 믿으며 초겨울 마지막 잎새가 그러했듯 오늘도 멀어져가는 청소년기에 대한 기억을 힘겹게 부여잡고 살아가고 있다. 정신적 회춘을 거듭하다보면 언젠가는 청소년의 친구가 될 수 있기를...



*머니투데이 더엘(the L) 외부 필진의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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