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신탁 받은 주식이라도 '권리행사' 가능해졌다

13년차 금융전문 변호사가 말해주는 '자본시장' 이야기

김도형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2017.04.24 06:00

2017년 3월 23일. 대한민국 기업문화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엄청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되었다. 유명 전자 전기기구 생산업체인 A에 대한 적대적 M&A 과정에서 적대적 M&A를 시도한 실질주주 B는 실제 소유자인 자신이 아닌 C를 A회사의 주주명부상의 주주로 등재시켰고, C는 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해 개최되었던 A 회사의 주주총회결의 등이 취소되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와 같이 실질주주와 형식주주가 다른 경우 지금까지 우리 대법원 판례는 형식주주가 아닌 실질주주가 진정한 주주이며 따라서 형식주주에 불과한 C는 주주총회결의 취소를 구할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C의 청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이 사건 1, 2심 판결 또한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C의 주주총회결의 취소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주주명부 상에 기재된 주주가 형식주주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그 자만이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으며, 별도의 주금을 납입한 실질주주가 있다 하더라도 실질주주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기존의 입장을 변경하였다.

"생각보다 명의신탁 주주 많다"

사건을 접하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회사들이 주식을 실제 주주가 아닌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들의 주식이 차명으로 되어 있는 경우도 다반사다. 심지어 여러 사람에게 주식을 맡겨 놓아 정작 대주주가 자신 명의로는 주식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도 보았다. 

일련의 사례를 접하면서 속으로 명의대여자가 속된 말로 나쁜 마음을 먹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실질주주가 자신이 실질주주임을 입증하면 주주명부상의 형식주주를 제치고 의결권 행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경영권 방어가 가능하였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위와 같은 기존의 입장을 변경하였기 때문에 앞으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명의신탁된 주식들이 많은 것일까? 일단은 상법의 연혁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우리 상법은 200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주식회사를 설립하려면 3인 이상의 주주를 반드시 두도록 하였다(이것도 1996년도 개정으로 완화된 것이고, 그 이전에는 7인 이상의 주주를 두도록 하였다). 결국 혼자서는 주식회사를 설립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부모, 형제자매, 직원 등에게 부탁하여 주식을 분산하고 주금은 본인이 전부 납입하는 방식으로 회사 설립이 이루어져 왔다. 

2001년 상법 개정을 통하여 1인 주주의 주식회사 설립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작은 회사들의 경우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혹은 알면서도 여러 사정으로 인하여 기존의 명의를 그대로 유지한 상태로 현재까지 회사를 운영해 오고 있다. 이와 같은 사정 외에도 주식인수계약을 하면서 당사자와 그 명의자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흔히 발생하고 있다. 

1인 회사나 가족회사 또는 소수 동업자가 설립한 회사는 세제상의 혜택 또는 자신이 실제 주인임을 외부에 공개하기 꺼리는 등의 각종 이유로 실질적인 주식 소유자가 따로 존재하고 주주명부에 기재된 주주는 그 명의만을 빌려주는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은 물론 상당히 규모가 큰 회사에서도 주식공개를 하지 않고 비공개회사로 유지하면서 증자를 할 때 실제로는 기존의 대주주가 신주를 인수하면서 명의만 제3자 앞으로 해 두는 경우가 많다. 신규 투자자와 사이에 신주인수 규모와 인수자 등에 관한 사전협의를 거쳐 신주를 발행하되 주주명부상 주주명의는 그 투자자가 제시하는 데 따라 제3자에게 분산해 두는 경우도 많이 있다.

"명의신탁 주식…하루 빨리 환원해야"

현재 주식을 자신의 명의가 아닌 제3자에게 명의 신탁해 놓고 있는 대주주 등이 있다면 하루빨리 자신의 명의로 주식을 회복하는 절차를 진행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국세청이 차명주식에 대해서는 편법증여 등 고액탈세 뿐만 아니라 체납처분 회피, 주가조작 등 불법거래에 악용될 여지가 높다는 판단 하에 최근 주식 명의신탁 사례들을 적발하고 조세포탈에 대한 추징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가세하여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형식주주에게 무조건적인 의결권을 인정하게 되면서 명의신탁 주식으로 인하여 실제주주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매우 커졌기 때문이다. 

일단 국세청에서는 2001년 7월 23일 이전에 설립된 중소기업들이 당시 상법 규정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명의 신탁한 주식들에 대해서는 세무조사 없이 간편하게 실제 소유자에게 환원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므로, 예전부터 명의 신탁된 주식들을 찾을 수 있는 길은 보다 쉽게 열려 있다.

이번 판결은 '모든 재산의 실명제' 전환 마침표

재산 소유자는 자신의 이름으로 재산을 소유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맡겨 놓아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재산 실명제는 실제 거래관계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세금 탈루 등을 억제하는 등의 효과가 있다. 재산은 크게 부동산, 금융자산, 주식 등으로 대별해 볼 수 있는데 주식을 제외한 나머지 재산들은 부동산실명법, 금융실명법 등이 순차로 시행되면서 실명제를 당연시했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 전까지만 해도 주식은 이러한 실명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대법원에서 이번 판결을 통해 사실상 주식에 대해서도 실명제 도입을 선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이와 같은 중요한 법 정책적 변경을 입법부가 아닌 사법부가 결정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에 대한 비판도 있을 수 다. 하지만 주식 실명제 또한 대세적인 흐름이고 사회 정의에 부합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이 판결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다만 이 판결의 의미와 적용범위에 대해 법률 전문가 사이에서도 약간은 혼란이 있다. 이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 및 의견개진은 앞으로 많은 법률 전문가들과의 몫으로 남았다.

법무법인(유한) 바른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김도형 변호사는 한국증권법학회 이사, 금융보험법연구회 간사 등 금융·증권·자본시장 분야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겸임교수(금융법실무)를 맡고 있다.




*머니투데이 더엘(the L) 외부 필진의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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