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180억 기부에 140억 증여세 부과는 부당" 첫 판결

대법 전원합의체 "회사지배에 악용하려는 주식기부가 아님에도 엄격히 문언에 매달려선 안돼"

황국상 기자 2017.04.20 15:16

대법원 청사



180억원대 재산을 기부받은 공익재단에 대해 경제적 세습 여부를 따지지 않고 140억원에 이르는 증여세를 물린 과세당국의 처분이 부당하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일 구원장학재단이 수원세무소를 상대로 제기한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청구소송에서 구원장학재단 패소판결을 내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구원장학재단은 2002년 '수원교차로' 창립자인 황필상 씨와 아주대 관계자 등으로부터 3억원을 출연받아 설립된 재단이다. 2003년에는 황 씨와 황 씨의 동생이 수원교차로 주식 90%를 구원장학재단에 증여했다. 당시 구원장학재단이 기부받은 수원교차로 주식의 가액은 180억원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황 씨 등은 재산을 출연하기만 했을 뿐 정관작성이나 이사선임 등 재단설립과정에 참가하지 않았다.

수원세무서는 이같은 기부행위에 대해 공익목적사업의 효율적 수행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은 인정했으나 상증세법(상속세 및 증여세법) 규정을 근거로 140억원에 달하는 증여세를 물렸다.

상증세법 제48조 1항은 공익법인 등이 출연받은 재산에 대해 증여세를 과세하지 않도록 하되 '공익법인이 내국법인의 지분 5% 이상을 출연받은 경우 5% 초과 부분에 대한 가액을 증여세 과세가액에 포함시킨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주식을 기부한 자가 해당 내국법인의 최대주주가 아니면 주식가액을 비과세하도록 하고 있다.

1심은 상증세법 조항을 형식적으로 해석하면 증여세를 물리는 게 맞겠지만 경제력 세습목적과 무관하게 장학사업에만 활용하는 데까지 세금을 물리는 것은 위헌적이라며 구원장학재단 측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심은 "장학재단에 과세하는 것이 장학재단 존속을 불가능하게 하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법정요건이 충족되는 이상 해당 과세처분이 적법하다"며 1심을 뒤집었다.

쟁점은 황 씨와 황 씨의 동생을 수원교차로의 최대주주로 볼 것인지 여부, 그리고 구원장학재단을 황 씨의 특수관계인으로 봐야할 지 여부였다. 구원장학재단에 주식을 기부한 후 황 씨 등에게 남은 수원교차로 지분은 10%에 불과했다.

만약 기부 이전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면 황 씨는 당연히 수원교차로의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구원장학재단에 물린 증여세 과세는 정당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반대로 기부 이후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면 황 씨의 지분은 10%에 불과해 최대주주가 아니고 구원장학재단에 물린 140억원대 증여세 과세처분은 부당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아울러 구원장학재단이 황 씨 등의 특수관계인이 된다면 당연히 황 씨는 수원교차로의 최대주주로 간주되고 앞서 살펴본 것처럼 구원장학재단에 부과한 140억원대 증여세 처분이 적법하게 된다. 역시 반대로 구원장학재단이 특수관계인으로 간주되지 않게 되면 증여세 부과처분도 부적법하게 된다.

대법원은 최대주주 판단시점을 기부 이후 시점으로 봐야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상증세법 조항은 공익법인을 내국법인에 대한 지배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즉 '내국법인의 최대주주가 되려는 자'의 편법증여를 규제하려는 것이지 과거에 '내국법인의 최대주주였던 자'의 재산출연을 규제하려는 게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기부자가 공익재단과 특수관계가 없어서 최대주주 자격을 상실했다면 기부자는 더 이상 공익재단을 내국법인 지배수단으로 이용할 수 없다"며 "최대주주 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주식이 출연된 이후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단순 재산출연 행위만 기준으로 특수관계 여부를 판단할 경우 공익재단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아무 방법이 없는 기부자와 해당 공익재단 사이의 특수관계를 인정하게 된다"며 "이는 비영리 법인과 특수관계에 있는 자의 범위를 합리적 이유없이 확장해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원심은 비영리법인 설립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재산출연만으로 특수관계를 인정하기에 충분하다는 전제에서 과세당국의 증여세 부과처분을 적법하다고 봤다"며 "원심은 상증세 법령의 해석에 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에 반대하는 소수의견도 있었다. 김용덕·김소영·박상옥 대법관은 △현행 상증세법 규정을 문언 그대로 해석할 경우 주식출연 직전시점에 기부자가 최대주주인지 판단하도록 돼 있다는 점 △기부자가 공익재단 설립과정에 구체적으로 관여하지 않더라도 사후적으로 재단임원진을 장악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구원장학재단에 대한 과세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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