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억 기부에 세금 140억…기부금에 세금폭탄 이유는

김만배 기자이태성 기자양성희 기자한정수 기자김종훈 기자 2017.04.22 06:41
180억원 기부에 140억원의 세금을 부과 받은 수원교차로 창립자 황필상씨가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전원합의체 선고를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구원장학재단이 수원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구원장학재단은 2003년 2월 황씨로부터 수원교차로 주식 90%(180억 상당)를 기부 받았다. 2017.4.20/사진=뉴스1


180억원 상당의 주식을 기부해 설립한 장학재단에 140억원의 증여세를 부과할수 있을까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굉장히 부당한 일로 보이지만 공익재단을 둘러싸고 그동안 벌어졌던 논란을 고려하면 상당히 복잡한 문제가 됩니다. 공익재단이 일부 재벌들의 경영권 승계에 악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이 지난 20일 이에 대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상속세 등을 피하기 위한 편법으로서의 공익재단 출연이 아니라면 증여세 부과는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같은 소송이 벌어진 이유와 대법원의 결론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려 합니다.

180억원 기부했는데 140억원 세금부과…"편법승계 막기 위한 법"

이번 사건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생활정보 소식지 '수원교차로'를 창업한 황필상씨는 2002년 8월 수원교차로의 주식 90%(180억원)와 현금 3억여원을 기부해 장학재단을 설립합니다. 사실상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수원세무서는 2008년 9월 두달간 세무조사를 벌인 후 '황씨의 주식 기부는 무상증여에 해당한다'며 재단에 140억여원의 증여세를 부과합니다. 재단 기부금의 절반이 넘는 돈이 세금으로 나가게 된 것입니다.

세무당국의 이같은 처분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른 조치였습니다. 이 법은 공익재단 등을 통한 편법증여를 막기 위해 재단이 출연자와 특수관계인 기업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5%넘게 보유하면 그 초과분에 대해 증여세를 매길 수 있도록 규정합니다. 다만 주식을 기부한 자가 해당 기업의 최대주주가 아니면 주식가액을 비과세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사실 공익재단을 통한 편법증여는 수차례 문제가 돼 왔습니다. 공익재단 출연금이 일정 수준을 넘지 않을 경우 세금이 매겨지지 않으니 경영권 승계 과정에 재단을 끼워넣는 방법을 재계에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해당 법 조항도 이같은 폐단을 막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황씨는 '재단에 기부한 주식은 세습 목적이 아니다"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당연히 세무당국은 '세금부과가 정당하다'고 맞섰고, 이때부터 '180억원을 기부한데 대해 140억원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정당한가'를 놓고 공방이 시작됐습니다.

1,2심 서로 다른 결과, 대법원 판단은?

해당 소송에서 1심은 법 조항을 형식적으로 해석하면 증여세를 물리는 게 맞겠지만, 경제력 세습목적과 무관하게 장학사업에만 활용하는 데까지 세금을 물리는 것은 위헌적이라며 구원장학재단 측의 손을 들어줍니다.

반대로 2심 재판부는 "장학재단에 과세하는 것이 장학재단 존속을 불가능하게 하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하더라도 법정요건이 충족되는 이상 해당 과세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 세무당국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 재판은 결국 대법원으로 향했고, 대법관들은 해당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넘기기로 결정합니다. 대법관 13명 전원이 해당 사건에 대해 의견을 밝히고, 다수결로 결과를 정하기로 한 것입니다.

대법원에서 쟁점은 △황씨를 수원교차로의 최대주주로 볼 것인지 △구원장학재단을 황씨의 특수관계인으로 봐야 할지 여부로 모아졌습니다. 만일 기부 이전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황씨는 수원교차로의 최대주주로, 구원장학재단에 물린 증여세는 정당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반대로 기부 이후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황씨에게 증여세 부과는 부당하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여기에 구원장학재단이 황씨의 특수관계인으로 인정되면 당연히 황씨는 수원교차로의 최대주주로 간주, 증여세 처분이 적법하게 됩니다.

대법원은 일단 최대주주 판단시점을 기부 이후 시점으로 봐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대법원은 "해당 법 조항은 공익법인을 이용해 기업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내국법인의 최대주주가 되려는 자'의 편법증여를 규제하려는 것이지 과거에 '내국법인의 최대주주였던 자'의 재산출연을 규제하려는게 아니다"라고 판단했습니다.

또 "단순 재산출연 행위만 기준으로 특수관계 여부를 판단할 경우 공익재단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아무 방법이 없는 기부자와 해당 공익재단 사이의 특수관계를 인정하게 된다"며 "이는 비영리 법인과 특수관계에 있는 자의 범위를 합리적 이유없이 확장해석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울러 대법원은 "기부자가 재단의 정관 작성이나 이사 선임 등 설립 과정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했을 때만 둘의 주식을 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기업 오너 등이 세금을 내지 않고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공익 재단을 틀어쥐고 기업을 지배하려 했을 때만 '재단 기부 주식'에 증여세를 물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이 결과적으로 1심 판결의 손을 들어준 셈입니다.

김용덕·김소영·박상옥 대법관은 △현행 상증세법 규정을 문언 그대로 해석할 경우 주식출연 직전시점에 기부자가 최대주주인지 판단하도록 돼 있다는 점 △기부자가 공익재단 설립과정에 구체적으로 관여하지 않더라도 사후적으로 재단임원진을 장악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구원장학재단에 대한 과세처분이 적법하다는 의견을 냈습니다만, 소수의견으로 기록됐습니다.


대법원은 이번 결정을 내리는데 5년 7개월의 시간을 썼습니다. 대법원은 재판이 늦어진 이유와 관련, "법 해석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선의의 기부는 장려하고 제도의 편법적 남용은 견제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두고 대법관들이 고심해왔다"고 전했습니다.

대법관의 고민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남을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편법증여'와 '선의의 기부'를 구분하는 명확한 선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대법원이 최대주주 판단시점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면서도 "선의의 기부와 편법증여를 구분할 기준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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