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L생활법률]돼지흥분제 몰래 먹이면 어떤 죄?

본인 동의 없이 몰래 약물 주입시키는 것은 '신체 훼손'…'상해죄'

장윤정(변호사) 기자 2017.04.29 01:31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신체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신체 자기결정권을 가진다. 이런 권리는 헌법에서 보장되는 것으로, 본인의 허락 없이 다른 사람은 함부로 남의 신체에 그 어떠한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최근 미국 뉴욕의 한 한인 여성이 의사인 전 남자친구가 자신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약 한달 간 몰래 피임약을 먹여온 사실을 알게 됐다며 법원에 500만달러(한화 약 57억원)을 배상해달라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 여성은 피임약을 먹는 데에 동의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전 남자친구는 그녀가 피임약을 먹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주스에 약을 녹여 마시게 해왔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약 복용을 원치 않았음에도 타인의 주도면밀한 계획에 의해 강제로 몸에 약물을 받아들이게 된 경우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대선후보 중 한 명이 2005년 발간한 자서전에서 대학교 1학년 때 친구가 짝사랑하는 여자가 친구와 맺어질 수 있게 하기 위해 그녀 몰래 돼지발정제를 먹이는 일을 공모했지만, 약을 먹은 여성이 여전히 성관계에 응하지 않아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일화를 기술했던 사실이 밝혀지며 파문이 일었다.

 

사실의 진위 여부와 그때 이들이 구해와 여성에게 먹였던 약물이 실제 돼지발정제가 맞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강간 미수는 차치하고라도 약물을 복용시킨 행위 그 자체로서도 충분히 불법성이 인정될 사안이다.

 

돼지발정제는 한 때 양돈 농가에서 돼지를 교배시킬 때 사용했던 흥분제다. 더 많은 수의 돼지를 양산해 수익을 높이기 위한 장치로 활용됐던 약물이지만, 현재는 돼지를 자연교배가 아닌 인공수정으로 교배하고 있어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돼지발정제의 주된 성분은 '요힘빈'이다. 식약처에서 유해물질로 지정돼있는 인체에 위험할 수 있는 물질이다. 요힘빈은 인체에 주입될 경우 소량이라도 심장과 신경계 및 혈관 작용에 손상을 입힐 수 있는 위험한 물질이라 동물에게 주입할 때에도 극히 소량만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위험한 각성 효과를 지닌 약물을 최음제로 사용하기 위해 본인 동의도 없이 몰래 다른 사람의 몸에 주입시키는 행위는 그 약물 반응으로 어떤 부작용이 현실화 됐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불법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몸에 임의로 약물을 주입시키는 행위는 형법상의 '상해죄'를 구성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형법 제257조 제1항은 사람의 신체를 상해한 경우에 적용되며, 가해자를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토록 규정하고 있다.

 

상해죄에서 말하는 '상해'의 의미에 대해 우리 대법원(99도4305)은 피해자 신체의 완전성을 훼손하거나 생리적 기능에 장애를 초래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약물을 주입 당한 사람이 그 반응으로 실신을 하는 등 외관으로 볼 때 특별한 반응이 생기지 않았다 하더라도 약물로 인해 신체 내부의 호르몬이 변화했거나 혈압이 상승했다는 등의 사정이 발생한 것만으로도 생리적 기능에 장애가 초래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독일의 경우에도 수영 선수들에게 호르몬 약인 테스토스테론을 비타민제라고 속이고 복용케 한 의사를 상해죄로 판단한 판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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