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파동' 조짐…고민 깊은 양승태 대법원장, 침묵 깰까

양성희 기자 2017.05.16 15:51
양승태 대법원장/사진=이동훈 기자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사법개혁 움직임을 방해하며 행정권을 남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지 두어 달째. 사법부 최고 책임자인 양승태 대법원장은 여전히 침묵 중이다. 하지만 양 대법원장이 직접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일선 판사들의 요구는 거세지고 있어 오랜 침묵을 깨고 갈등 봉합의 물꼬를 틀지 주목된다.

16일 각 지방법원에서 진행된 판사회의 결과를 모아보면 일선 판사들은 양 대법원장이 책임 소재를 가리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 명확한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지역의 한 판사는 "양 대법원장이 취임 초기부터 '소통'을 강조했는데 이 사태로 무색해졌다"며 "지난해 9월 김수천 전 부장판사 뇌물수수 사건으로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것처럼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일선 판사들의 움직임은 '전국법관대표회의'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날 서울중앙지법 소속 단독 판사들도 회의 소집 필요성에 공감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릴 경우 2009년 신영철 당시 대법관의 '촛불 집회' 재판 개입 논란 이후 8년 만이다.

판사들의 집단행동인 '사법파동' 양상을 보이자 양 대법원장이 깊은 고민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 고위 관계자는 "시기와 방법의 문제일 뿐 직접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느냐"며 "충분히 고민 중일 것"이라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이 직접 공식 석상에 나와 입장을 발표할 경우 시기는 공직자윤리위원회 활동 종료 이후가 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오는 22일 첫 회의를 여는 위원회의 최종 심의 결과는 빠르면 다음 달 중 나올 것으로 점쳐진다.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이 사건에 연루된 법관들의 징계 수위에 관한 의견을 대법원장에게 전달하는 만큼 위원회 안건 심의는 진상 조사 절차상 마무리 단계로 꼽힌다.

이에 대해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책임 소재에 따라 징계를 내리는 등 관련 절차가 끝난 뒤 입장을 내는 게 순서 아니겠느냐"며 "지금으로선 일선 판사들의 재조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대법원장이 내놓을 메시지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 대법원장의 임기가 오는 9월 종료되는 사정상 '신뢰 회복'과 같은 원론적인 메시지에서 더 나아가는 입장이 나오기는 힘들 것이란 분석도 있다.

또 다른 지방의 한 부장판사는 "정권도 바뀌었고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현 대법원장이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는 없다"며 "입장표명에 따른 실익은 없지만 상징적 의미는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날 기준으로 판사회의는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을 포함해 지금까지 18개 지방법원 중 12곳에서 진행됐다. 이날도 창원지법 등에서 추가로 열리고 있으며 지법보다 작은 규모인 각 지원에서도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회의에 참석한 일선 판사들은 양 대법원장의 입장표명과 더불어 △진상조사위원회가 해소하지 못한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재조사 △사법행정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전국법관대표회의에 대한 법원행정처의 물적 지원 등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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