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관계

[친절한판례氏]중단된 공사현장서 불 피우다 일용직 사망…산재?

계약기간 중이라면 근로관계 있어…현장 살피다 사망했다면 업무상 재해

장윤정(변호사) 기자 2017.05.23 17:19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공사 현장 일용직 노동자들의 경우, 업무의 특성상 계절이나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일을 하다 보니, 공사가 완료될 때까지의 기간 중 실제 업무가 가능한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때, 실제 업무를 하지는 않고 있지만 날씨 등의 여건만 맞으면 다시 업무를 재개할 상태에 있는 노동자를 근로 중에 있다고 볼 수 있는지를 판단한 대법원 판례(2009두157)가 있다.

 

A씨는 공사업체인 X회사와 현장에서 일용직으로서 석공업무를 수행하기로 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기간은 '근무일로부터 공사가 완료될 때'까지로 했다.

 

A씨는 하루하루 일당을 지급 받는 식으로 일했기 때문에 겨울철이라 공사가 중지된 기간 동안에는 석축공사가 시행되지 않아 일당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었다.

 

경력 20년이 넘은 베테랑 업자였던 그는 현장에 쌓인 눈으로 한동안 예정된 석축작업 계획이 없었음에도 공사중지기간 이후 공사가 재개되기 전 작업여건 등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공사장을 찾았다.

 

그러던 중 A씨는 몸을 녹이기 위해 나뭇가지를 모은 뒤 석유를 뿌려 불을 피우려던 중 솜바지에 불길이 옮겨 붙으며 화상을 입고 사망했다.

 

A씨의 유족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해달라고 청구했지만 공단은 "A씨의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며 거절했다.

 

이에 A씨의 유족들은 법원에 근로복지공단의 지급거절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석축공사가 중단된 시점에서 현장을 찾아 사고를 당한 A씨의 죽음이 업무와 관련된 재해라고 보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상의 산재 처리가 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A씨 측은 비록 사고 당시가 공사중지기간이었다 하더라도 A씨와 X회사 간에 근로계약이 된 기간 중의 사고였고, 사고 장소가 공사장이었다는 점을 들어 업무상 재해를 주장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 측은 A씨가 현장에서 불을 피웠던 것은 업무와 관계없이 몸을 녹이기 위해 한 행동이었고, 사고 당시 그가 안전화도 신지 않은 채 가죽으로 된 단화를 신고 있던 것을 보면 전혀 업무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반박했다.

 

대법원은 A씨 측의 손을 들어줬다. A씨의 사망 사고가 업무상 재해에 해당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계약직 근로자도 계약기간 동안에는 실제 일을 하고 있는지 여부와 관련 없이 근로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봤다. 일용직 근로관계에서 공사의 진행에 따라 근로의 제공이 일시 중단됐다가 재개되는 등 근로 제공의 연속성이 떨어지는 것은 상근직이 아닌 일용직 근로의 특수성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때문에 계약기간이 정해진 근로계약을 체결한 일용직 근로자의 경우에도 계약기간이 만료되지 않은 이상 공사가 일시 중지됐다고 해서 계약에 의한 기본적인 근로관계가 소멸된다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근로자가 어떤 행위를 하다 사망한 경우, 근로자가 그러한 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나 이유, 전후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그 행위를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원의 기준에 따르면, 근로자의 본래 업무행위나 그 업무의 준비행위, 사회통념상 그에 수반되는 생리적 행위 또는 합리적·필요적 행위로서 그 전반적인 과정이 사용자의 지배·관리 아래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로 인한 사망으로 인정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현장에는 휘발유를 사용하는 바이브레이터라는 기계도 있었고 겨울철 토목공사 현장에서는 모닥불을 피울 현실적인 필요도 있다는 점에서 A씨가 공사 현장에 비치된 휘발유로 불을 피운 것으로 보이며, 그가 귀가하지 않고 현장에서 불을 피운 것은 작업 가능 여부 등이 확실해질 때까지 대기하기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봤다.

 

또 근로복지공단이 지적한 사고 당시 A씨의 신발이 작업화가 아니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A씨의 차에는 작업을 위한 장비들이 실려 있어 작업화도 준비돼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작업화가 아닌 단화를 신고 있다 사고를 당했다고 해서 A씨가 작업의사 없이 현장에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결과 법원은 A씨가 사고 당일 현장 점검을 해 작업이 가능하다면 작업을 할 의도를 갖고 작업장비를 갖춰 포크레인 기사와 보조인 등과 함께 현장에 갔던 것으로 보이며, 현장을 둘러보고 대기하며 현장반장의 지시 내지 양해를 받아 몸을 녹이기 위해 현장 비치 휘발유로 불을 피웠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따라서 그 과정에서 불이 붙어 사망한 A씨의 사고는 X회사의 지배나 관리 아래 업무수행,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통상적인 활동과정 중 일어난 사고이므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 판례 팁 = 산재보험법 제37조 제1항은 근로자 측이 업무와의 연관성을 입증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근로자 측은 보상을 받기 위해 여러 사정들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따라서 산업재해의 입증책임은 여전히 근로자나 그의 유족들이 부담한다는 점을 명심해 사고발생시 증거나 증인확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관련 조항

- 근로기준법

제2조(정의) ①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

 

-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ㆍ질병ㆍ장해 또는 사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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