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수사'로 드러난 은밀한 사생활…처벌 받을까?

[박보희의 소소한法 이야기]'함정수사' 범죄 의사 없었다면 '위법', 범죄 기회만 줬다면 '합법'

박보희 기자 2017.05.28 06:01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지난 24일 군사법원은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습니다. A씨가 유죄 선고를 받은 건 '합의된 성관계'를 했기 때문인데요. 이게 왜 죄가 되나 싶으시죠? 문제는 상대가 '동성'이라서 입니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군인 또는 준군인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 합의를 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행위만으로 처발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 대표적인 '성소수자 차별법'으로 꼽히는 조항인데요. 

이 조항에 대한 판단은 일단 미뤄두고, 군은 A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함정수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져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군인권센터와 A씨의 변호사 등에 따르면 군은 데이트 애플리케이션 등을 이용해 동성애자 군인들을 유인하고, 색출해낸 동성애자 군인에게 또 다른 동성애자를 추궁해 찾아내는 방식으로 군대 내 동성애자들을 색출해 냈습니다. 
이렇게 수색을 당한 군인이 30여명이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군인권센터가 파악해 법적 도움을 주고 있는 군인만 15명에 달합니다. 당사자들은 이게 '함정수사'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궁금중. 함정수사로 붙잡은 사람을 처벌할 수 있을까요? 

◇함정수사는 불법…범인 잡아도 처벌 못해

함정수사는 '본래 범의(범죄를 저지르려는 의사)를 가지지 않은 자에 대해 수사기관이 사술(남을 속이는 수단)이나 계략(어떤 일을 이루기 위한 꾀나 수단) 등을 써서 범의를 일으켜 범죄인을 검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수사기관이 범죄를 저지를 생각이 없는 사람을 속이거나 유인해서 범죄를 저지르도록 만들어서 잡는 것을 말하는데요. 

대법원은 '함정수사는 위법함을 면할 수 없고 이런 함정수사에 의한 공소제기는 절차가 법률 규정에 위반해 무효'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즉 함정수사 자체가 불법이라서 함정수사를 해서 잡은 범인은 처벌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근거는 형사소송법 제 327조 제2항입니다. 공소 제기 절차가 법률 규정에 위반해 무효일 때는 공소기각 선고를 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공소는 검사가 법원에 형사사건 재판을 넘기는 것인데, 이를 기각해야 한다는 것은 판사가 잘잘못을 따지기도 전에 재판에 넘긴 것 자체에 문제가 있어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얘기죠. 절차가 잘못됐다는 겁니다. 

실제 대법원은 지난 2008년 경찰관이 노래방 도우미 알선 영업 단속 실적을 올리려고 노래방에 손님으로 가장하고 들어가 도우미를 불러낸 사건에서 '경찰이 함정수사를 한 것이라 공소제기 자체가 무효라서 공소를 기각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도우미를 불러 준 노래방 주인의 죄를 따질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당시 경찰은 손님인 척 하고 노래방에 가 도우미를 불러달라고 요구를 했는데요. 법원은 이 노래방이 평소에 도우미 알선 영업을 해왔다는 자료도 없었고, 경찰관도 제보나 첩보를 가지고 단속을 한 것도 아니고, 경찰관이 도우미를 요청하자 노래방 주인이 한 차례 거절했는데도 경찰이 다시 요구해 도우미가 오게됐다는 점 등을 고려해 '수사기관이 함정수사를 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쟁점은 '범죄 의도 유무'

함정수사 여부를 판단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준은 범죄의 의도를 이미 가지고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법원은 수사기관이 이미 범죄를 저지를 의도를 가진 사람에게 단순히 범죄의 기회를 제공했거나 범행을 쉽게 저지를수 있도록 한 것에 불과한 수사 방법이라면 함정수사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수사기관이 아니라도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라면 함정수사가 아니라는 거죠. 

지난 2007년 대법원은 절도 혐의로 재판을 받은 피고인이 '함정수사'를 당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피고인은 공원에서 잠들어있는 취객을 발견해 으슥한 곳으로 데려가 지갑을 꺼냈습니다. 하지만 그 즉시 주변에 잠복 중이던 경찰관에게 잡히고 말았는데요.

당시 경찰은 술에 취해 잠들어있는 취객을 보고 잠복 수사를 했습니다. 이 근방에서 취객을 상대로 한 일명 '부축빼기' 수법의 범죄가 빈발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차에 취객을 발견하자 "기다렸다가 잡아야겠다"고 생각해 취객 근처에서 잠복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주변에 경찰이 있는 줄 몰랐던 피고인은 취객을 발견하고 지갑을 훔치려 했고, 마침 잠복 중이던 경찰에 잡히고 말았습니다.

피고인은 함정수사를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경찰이 노상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는 자를 발견하고 보호조치를 하지 않고 이를 이용해 범죄수사를 한 것은 부적절한 직무집행"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위험을 의도적으로 방치하면서 수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게 함정수사인 건 아니라고 봤습니다. 법원은 "이는 피해자에 관한 문제일 뿐 경찰관들은 피해자 근처에 숨어 지켜보고 있는 것에 불과하고 피고인은 스스로 범의를 일으켜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서 경찰의 수사가 위법하다고 볼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습니다.

◇軍, 사생활 질문 금지했는데도…

국방부 훈령은 지휘관 등은 병영 내 병사들에 대해 성지향성 설문조사 등을 통해 적극적인 동성애자 식별 활동을 하거나 병영 내 동성애자 병사에 대해 성경험, 상대방 인적 사항 등 사생활과 관련 질문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군은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해 내기 위해 거듭 병사들에게 성적 성향을 묻고, 또 다른 동성애자 군인은 없는지 확인하고, 인권위원회 등 외부에 수사 관련 사항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변호사를 선임하겠다는 군인에게 아웃팅을 당하겠다는 것이냐고 윽박지른 것이 녹취록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이렇게 색출된 군인 중 지난 24일 선고를 받은 A씨는 제대를 앞두고 취업까지 내정된 상태였지만, 군이 A씨의 제대를 막기 위해 구속 수사하면서 취업까지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오는 31일에는 또 다른 동성애자 군인이 같은 죄명으로 재판을 받습니다. 이런 군인이, 20대 청년이 군인권센터가 확인한 인원만 15명, 알려진 것만 30여명이 이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남성들은 병역의 의무를 집니다. 아직 국내 성소수자 인구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나온 것은 없지만 관련 단체들은 대략 전체 인구의 1~5% 정도로 추산하고 있는데요. 입대한 청년들 중 1~5%는 성소수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언제까지 이들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벌을 받고 전과자가 돼야 하는 걸까요. 해법이 필요해 보입니다.


공유하기

1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