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친절한 판례氏] 한정승인 받은 상속재산, 내 빚부터 갚을 수 있나

상속재산에 담보권 설정했다면 상속채권자 아닌 일반채권자가 우선권 가져

이태성 기자 2017.06.05 16:06
임종철 디자이너

부모가 재산 뿐 아니라 빚까지 남기고 돌아가셨을 경우 대개 '한정승인'이란 제도를 이용한다. 상속 재산 한도 내에 돌아가신 부모의 빚을 변제할 것을 조건으로 상속을 승인받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의 빚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빚이 있다면 상속 재산으로 내 빚을 먼저 청산할 수 있을까. 대법원은 이에 대해 일반 채권자가 상속재산에 관해 저당권 등의 담보권을 취득했다면 상속채권자보다 우선해서 빚을 받아낼 수 있다고 판결했다.

2002년 사망한 A씨의 아버지에겐 농협 빚이 있었다. A씨는 한정승인을 통해 상속인이 됐고 농협은 A씨에게 물려받은 재산 한도 내에서 빚을 갚도록 종용했다. A씨 역시 이에 동의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부동산 처분 절차가 시작됐다.

문제는 A씨에게도 밀린 세금이 있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체납된 세금을 받기 위해 A씨의 부동산 매각 대금 중 일부를 달라고 했다. 경매법원은 총 배당금액 중 절반 이상을 정부에게 배당을 해줬다. 농협은 배당 순위에서 밀려 돈을 받지 못했고, 이에 농협은 "세금보다 빚을 먼저 갚아야 한다"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농협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우선 상속인이 한정승인의 신고를 한 경우 피상속인의 채권자가 상속인의 고유재산에 대해 강제집행을 할 수 없다고 전제했다. A씨 아버지의 채권자가 A씨의 상속재산이 아닌 고유재산에 대해서는 강제집행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후 상속재산과 관련해서는 한정승인자로부터 상속재산에 관해 저당권 등의 담보권을 취득한 사람과 상속채권자 사이의 우열관계를 따져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무조건 상속채권자가 우선하는게 아니라 민법상의 일반 원칙에 따라 우선권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정부는 국세의 우선권을 주장했는데, 대법원은 "정부가 상속재산에 관해 우선권을 가진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는 상속재산 자체에 대해 부과된 조세나 가산금, 즉 당해세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의 경우 A씨에 대해 정부가 부과한 것은 부가가치세에 관한 것으로, 이는 당해세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단순히 조세채권자라는 이유로 농협에 우선해 정부에 부동산 매각 대금을 배당한 경매법원의 조치는 위법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다만 상속재산에 관해 담보권을 취득했다는 등 사정이 없는 이상, 한정승인자의 고유채권자는 상속채권자가 상속재산으로부터 채권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강제집행을 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형평의 원칙이나 한정승인제도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판결팁=한정승인자가 상속채권을 변제하기 전에 자신의 고유채권자에게 저당권을 설정해주었다면, 고유채권자는 상속재산에 대해서도 저당권자로서 상속채권자보다 우선해 변제를 받을 수 있다는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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