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들였는데 성폭행?"…이진욱 무고女는 왜 무죄일까?

[서초동살롱<172>] 이진욱·무고女 둘다 무죄일 수도 있어···무고와 성폭행 전혀 별개

한정수 기자 2017.06.17 04:01
배우 이진욱씨 /사진=임성균 기자

"집에 불러들였는데 성폭행이라는 거야?"
"일단 집에 들였으면 '예스'로 받아들이니까 성폭력 범죄가 줄어들 수가 없음. 여자가 '노'라고 하면 '노'인 것임."
"이진욱도 재판 받아야지 이제."

지난 14일 배우 이진욱씨(36)에게서 성폭행을 당했다며 거짓 신고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 여성 오모씨(33·여)가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기사 아래에 달린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댓글들입니다.

한 눈에 볼 수 있듯 선고 결과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 매우 다양합니다. 이씨가 이미 검찰에서 성폭행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을 두고 혼란스러워 하는 누리꾼들이 많습니다. 
양쪽이 상반된 주장을 하는 사건에선 한명이 무죄면 다른 한명은 유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결론부터 말하면 무고 혐의에 대한 무죄 선고와 이씨의 성폭행 혐의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씨와 오씨 모두 무죄인 경우도 가능하다는 겁니다. 자 그럼 왜 그런지 살펴보죠.

◇"원치 않는 성관계 강요받아" 고소…검찰은 오히려 무고죄로 기소

먼저 오씨의 고소장 내용을 통해 이번 사건을 되짚어보겠습니다. 오씨는 지난해 7월14일 서울강남경찰서에서 고소장을 작성해 제출했습니다. 그는 "같은해 7월12일 저녁 자리에서 지인과 동석한 이씨를 만나 저녁을 먹고 헤어졌는데, 그날 밤 늦게 집으로 찾아온 이씨에게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강요받았다. 성폭행을 당한 사실에 따라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고 적었습니다.

오씨는 이후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가구 설치를 해준다며 집으로 찾아 온 이씨가 강제로 옷을 벗겼고,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이씨가 강제로 성관계를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자신의 몸에 상처가 났다고 주장하고, 뜯어진 속옷을 제출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이씨는 의혹을 모두 부인했습니다. 이씨는 오히려 오씨를 무고 혐의로 맞고소했죠. 특히 그는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한 자리에서 언론에 "무고는 정말 큰 죄"라고 말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 사이에 진실공방이 이어질 것 같았는데요.

그러나 경찰에서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이 이씨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오씨를 무고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습니다. 여론은 이씨를 옹호하는 쪽으로 흘러갔고 대중들은 오씨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터무니없는 허위가 아니면 무고죄 안돼"

그렇다면 검찰과 법원의 판단이 달랐던 이유는 뭘까요. 먼저 무고죄 관련 대법원 판례를 살펴볼까요. '고소내용이 터무니없는 허위사실이 아니고 사실에 기초해 그 정황을 다소 과장한 데 지나지 않은 경우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입니다. 또 무고죄와 관련해 '허위성을 단정하기 미흡하다면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판례도 있습니다.

오씨의 고소내용이 다소 과장된 '진실'일 수 있다는 것이 이번 무죄 판결의 핵심인데요. 다시 말해 "성폭행을 당했다"는 주장이 명확하게 거짓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겠죠. 오씨의 주장이 믿을만 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오씨가 밤 12시 쯤 찾아온 이씨에게 문을 열어 주고 집으로 들어오게 한 점 등에 비춰보면 합의 하에 성관계를 했는데도 오씨가 거짓 신고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먼저 전제했습니다. 법원은 성관계의 성격을 떠나 오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고, 고소의 경위가 자연스러운 점 등을 들어 무고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기 부족하다고 본 셈입니다.

법원은 "이 사건 경위나 진행 경과, 성관계 전후의 상황 등에 대한 오씨의 진술이 이씨의 진술과 강제성 여부에 대한 부분에서만 차이가 날 뿐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며 "오씨의 진실에 신빙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어 "이씨 진술에 의하더라도 성관계에 대해 명시적으로 동의한 사실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습니다.

법원은 특히 "오씨가 성관계 당시 및 직후에 느낀 수치감 등의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는 점, 성관계가 있은 다음 날 친구 조언을 듣고 경찰병원으로 가 고소를 하게 된 것으로 고소 경위가 매우 자연스러운 점, 모함할 의도로 허위 고소를 했다고 볼 사정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죠.

결국 무고 혐의를 받는 피고인의 고소내용과 진술의 신빙성이 유무죄를 가를 핵심 기준으로 평가됩니다. 앞서 가수 겸 배우 박유천씨(31)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가 무고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이모씨(25·여) 사건이 떠오르는데요.

당시 이씨는 "박씨가 화장실에 가면서 '신체 일부를 잡아달라'고 해 도와달라는 말로 이해하고 따라갔던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안에서 강제로 성관계가 이뤄졌다는 것이죠. 그러나 법원은 "박씨가 부축을 받을 정도로 취한 상태가 아니었던 점, 박씨가 이 같은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이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봤습니다. 특히 성폭행을 당했다던 이씨가 사건이 있던 그날 클럽에 갔던 정황 등도 주요한 판단 근거가 됐습니다.

"양쪽 다 무죄인 '이상한' 결과 얼마든 나올 수 있어"

그렇다면 이제 이진욱씨 사건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무고 혐의 무죄가 곧 성폭행 혐의 인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 법원이 판단한 지점은 오씨가 고소가 허위였느냐에 대한 것일 뿐입니다. 둘 사이에서 벌어진 성관계의 성격은 전혀 판단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형사 판결은 결국 증거를 토대로 이뤄지는 것"이라며 "피고인의 행위가 범죄에 해당하는지를 90% 이상 확신할 수 있을 때 유죄 판결이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심정적으로는 유죄의 느낌이 들더라도, 증거에 의해 증명되지 않으면 쉽게 유죄 판단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때에 따라 이씨도 무혐의이고, 오씨도 무죄인 이상한 결과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지점에서 검찰의 수사가 미흡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한 법조계 관계자는 "한 사람이 피고인이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사건에서는 검찰이 충분한 시간을 들여 꼼꼼히 수사를 진행했어야 한다"며 "이번 사건처럼 무죄가 선고된 경우에 검찰 수사기 미진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쨌든 사건의 1라운드는 마무리됐습니다. 주목되는 점은 검찰에서 항소를 할지 여부인데요. 무죄가 선고된 이상 검찰이 한번 더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것이라는 게 법조계 안팎의 관측입니다. 무죄 판결이 나온 만큼 오씨가 항고 등을 통해 이씨에 대한 재수사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사건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되려면 꽤 긴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누구에게도 억울함이 없이 사건이 잘 마무리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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