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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은 '합병'으로 지배력을 키웠나?

[디브리핑(debriefing): 이재용 부회장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한정수 기자, 김종훈 기자 2017.06.20 04:01
/그래픽=김지영 디자이너

뇌물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은 유죄일까? 무죄일까?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검찰은 이 부회장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65)의 '비선실세' 최순실씨(61)에게 승마 지원금 등의 뇌물을 건넸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 논리가 성립하려면 합병이 이 부회장에게 이득을 안겨줬다는 전제가 깔려야 한다. 그 '이득'으로 특검과 검찰이 지목한 게 '그룹 지배력 강화'다. 그러나 이 부회장 측은 이런 전제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합병을 통해 이 부회장이 누린 지배력 강화 효과는 거의 없다는 얘기다.

◇"합병, 지배력 강화에 도움 안 돼"


그동안 재판에선 삼성 측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경영권 승계 차원에서 추진했다는 증언들이 나왔다. 합병 당시 삼성물산 주주였던 일성신약의 윤석근 부회장은 지난달 19일 법정에서 "김종중 당시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이 합병에 찬성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이번 합병이 경영권 승계에 아주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그러나 삼성 측은 윤 부회장 증언의 신빙성을 문제 삼고 있다. 윤 부회장이 "승계라는 말은 들었지만 경영권이라는 말은 언급되지 않은 것 같다"고 하는 등 진술을 수차례 번복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은 "특검은 삼성물산 합병이 승계를 위한 중요한 작업인 것처럼 주장한다"며 "그러나 합병을 못하면 승계를 못하고, 합병을 하면 승계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 측은 재판에서 시종일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와 무관하다는 주장을 펴왔다. 실제로 이 부회장이 지분 23.2%를 보유했던 합병 전 제일모직은 삼성생명 지분 19.3%를,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7.2%를 보유하고 있었다. 합병 전부터 이 부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는 얘기다. 또 합병으로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하는 회사가 제일모직에서 통합 삼성물산으로 바뀌었는데, 이 부회장의 이 삼성물산 지분율은 합병 전 23.2%에서 합병 후 16.5%로 오히려 줄었다.

◇증거 부족···정황과 증언에 의존


이 부회장이 합병 성사를 위해 박 전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건 특검과 검찰이 이 부회장에게 적용한 뇌물 혐의를 구성하는 핵심 논리다. 삼성 측이 공무원이 아닌 최씨에게 건넨 돈이 뇌물로 인정되려면 최씨가 공무원인 박 전 대통령과 '경제적 공동체'이거나 이들 간에 제3자 뇌물 관계가 성립돼야 한다. 판례상 가족 관계가 아닌 경우 '경제적 공동체'는 인정되기 어렵다.

결국 제3자 뇌물 혐의가 적용될 수 밖에 없는데, 이 경우 단순 뇌물과 달리 반드시 부정한 청탁이 있었음이 입증돼야 한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합병을 통해 누릴 것이 많지 않다면 박 전 대통령에게 각종 위험을 무릅쓰고 부정한 청탁을 할 유인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만약 특검과 검찰이 이 논리를 깨지 못한다면 이 부회장에 대한 뇌물죄 적용은 더욱 어렵게 된다.

당초 특검은 "증거가 차고 넘친다"며 이 부회장 등에 대한 혐의 입증을 자신했다. 그러나 실제 재판에선 간접적인 정황 또는 증인들의 증언에 의존할 뿐 직접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은밀하게 이뤄지는 뇌물 사건은 그 특성상 물적 증거 확보가 쉽지 않다. 적지 않은 뇌물 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지는 이유다.

앞으로 이 부회장에 대한 재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실제로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에 도움이 됐는지, 이 부회장이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박 전 대통령 측에 부정한 청탁을 했는지 여부를 가리는 데 심리가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에 대한 1심 선고는 이르면 구속 만기일인 8월27일 즈음에 내려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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