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치요? 먹는 건 줄 알았어요"

[서초동살롱<173>] "사랑합니다, 힘내세요"는 법정 밖에서…원활한 재판 위해 방청객 정숙 유지해야

박보희 기자 2017.06.24 10:06
박근혜 전 대통령

"방청객 여러분, 이 사건은 국민적 관심이 많은 중요한 사건입니다. 재판장의 지시와 통제에 따라 정숙을 유지하면서 원활히 재판이 진행되도록 협조해주십시오. 큰 소리를 내는 경우 법정 질서에 저해되고 심리에도 방해가 됩니다. 소란 행위를 할 경우 퇴정당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구치소에 구금되는 감치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법원경위들은 재판장의 위임을 받아 법정 질서 유지 활동을 하는 공무원입니다. 법정경위의 지시와 통제는 재판장의 것과 같습니다."

몇 달째, 조용하던 서초동이 시끌시끌 합니다.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일주일에 네차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재판이 열리고 있는데요. 박 전 대통령 재판은 시작부터 다른 재판과는 다릅니다. 매번 재판은 방청객들의 '평온'을 부탁하는 판사의 당부로 시작합니다. 재판 때마다 방청객들의 돌발 행동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런 판사의 당부에도 방청객과 법정 내 질서를 유지하는 법정경위와의 긴장 상황이 잇따라 연출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께 경례"로 시작…끝은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이는 피고인 박 전 대통령이 법정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박 전 대통령이 법정에 들어오면 방청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 전 대통령에게 인사를 합니다. 그때마다 법정경위들은 자리에 앉아달라고 요청을 하지만 그때 뿐입니다.

지난 20일에는 박 전 대통령이 법정에 들어오자 한 남성이 일어나 "대통령님께 경례"라고 외쳤다가 법정에서 쫓겨났습니다. 재판부가 "질서 유지를 생각해 방청을 허락할 수 없다"며 퇴장을 명하자 "대통령님께 인사하는데 질서에 무슨 지장이 있느냐, 대한민국 만세, 애국 국민 만세. 민족의 혼을 지켜야 합니다"라고 호기롭게 외치고는 법정 밖으로 사라졌습니다.

재판 시작 때마다 "박 전 대통령에게 일어나서 인사를 하겠다"는 방청객과 "안전을 위해 일어나지 말라"는 재판부와의 실랑이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안전을 위해 일어나지 말아달라"는 판사의 요청에 방청객들은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 재판장에게 예의를 지키듯 우리는 대통령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판사님이 들어올 때는 일어나라고 하고 대통령님이 들어오실 땐 왜 일어나지 못하게 하느냐"는 항의도 나왔는데요. 법원경위들과 판사들이 그럴 때마다 "혹시나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쁜 마음을 먹고 무슨 일을 할지 몰라서 그렇다. 신변보호 때문"이라고 조근조근 자세히 설명을 하지만 방청객들을 납득시키는 역부족인 듯 합니다.

재판은 방청객들의 "사랑합니다. 대통령님 힘내세요"라는 구호로 끝이 납니다. 언제부턴가 정해진 순서처럼 지켜지고 있는 '사랑과 격려의 외침'인데요. 재판이 끝날 때면 박 전 대통령을 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쥔 오른손을 굳건하게 흔들며 구호를 외치는 방청객들과 이들의 말려 질서를 유지하려는 법정경위의 실랑이는 이제 정해진 행사처럼 돼버렸습니다.

"대통령이 지나가시는데 어떻게 앉아있으라고 하느냐" "인사는 할 수 있는거지 인간이 인사도 안하고 어떻게 사나" "사랑한다는 말이 뭐가 나쁘다고 못하게 하느냐" "우리 대통령님을 내가 사랑한다는데 왜 말을 못하게 하느냐"는 등의 항의 역시 매번 이어지고 있습니다. 
 
◇증언 마음에 안 들면 '야유'에 욕설까지

출석한 증인이 방청객들의 마음에 안들기라도 하면 소란은 더 커집니다. 박 전 대통령에 불리한 증언을 한 증인이 들어오면 방청석에서는 '야유'가 나오고, "한 대 패고 싶다"는 욕설을 내뱉는 방청객도 있습니다. 물론 방청객들의 지지를 받는 증인들도 있는데요. 증인으로 출석해 모든 증언을 거부한 기업 임원은 이날 방청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방청객들은 전의 험악했던 분위기와는 달리 "역시 똑똑한 사람은 다르다" "오늘 증인 아주 마음에 들었다"며 간만에 환한 함박 웃음을 짓기도 했습니다.

방청객들의 돌발행동이 도를 넘어 위험한 순간이 연출된 적도 있는데요. 지난 19일에는 한 방청객이 여성 경위의 외모를 지적하며 "아가씨 아주 알밉다, 인상이 째려보는 것 같이 생겼다"고 말해 방청객과 법정경위 간 언성이 높아지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법정에서 소란을 피우면 '감치' 당할 수 있고 과태료 처분까지 가능하다"는 경고에도 방청객들의 돌발행동을 막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들이 '감금' 경고도 불사하고 몸을 던진 이유가 발견됐습니다. 

◇법정 소란, 즉시 '감방' 갈수도

지난 22일 법정경위가 "감치라는 말 모르세요. 감방 가시는거에요. 감옥에 가는 것"이라고 경고하자 한 방청객이 "먹는 건 줄 알았어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박수가 나오는 걸 어떻게 하느냐"고 했습니다.

감치가 먹는 것인 줄 알았다는 말은 곧 법정 소란이 어떤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죄인지 몰랐다는 말일 텐데요. 그래서 한번 정리를 해보려 합니다.

법원조직법은 법정의 질서유지를 위해 '재판장은 법정의 존엄과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사람의 입정 금지 또는 퇴정을 명할 수 있고, 그 밖에 법정 질서 유지에 필요한 명령을 할 수 있다'고 정해두고 있습니다 (제58조 2항). 방청객이 소란을 피우거나 판사, 법원경위의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법정 밖으로 쫓아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는 방청을 하지 못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쫓아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법원은 폭언, 소란 등의 행위로 법원의 심리를 방해하거나 재판의 위신을 췌손한 사람에게는 '20일 이내의 감치'에 처하거나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도있습니다(법 제61조). 감치는 경찰서 유치장이나 교도소, 구치소 등에 가두는 것을 말합니다. 법정에서 소란을 피우다 감치 명령을 받으면 즉시, 바로 구속할 수 있습니다. 법정에서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는 즉시 '구속'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재판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결정이 내려지는 곳입니다. 신중하고 제대로 된 재판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그 피해는 당사자가 고스란히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판사가 제대로 된 재판을 할 수 있도록 방청객으로서 도와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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