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관계

[친절한 판례氏] 근로자 자살, 어디까지 산재로 인정될까?

수치심·모욕감 등으로 자살했어도 산재 인정

이태성 기자 2017.07.13 04:01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로 스스로 죽음을 택했을 경우 산업재해가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돼야 해서 실질적으론 이런 경우 산재 인정이 쉽지 않다.

그동안 법원은 "자살은 개인의 선택인 만큼 스트레스가 사회 평균인의 관점에서 견딜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면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2008년 대법원 판례를 들어 업무상 재해 폭을 좁게 봐 왔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상황이 인정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내성적 성격의 근로자의 경우 특별히 가혹한 환경이 아니더라도 자살을 산재로 인정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A씨는 1992년 1월 C은행에 입사해 근무하다 2013년 1월 지점장으로 부임했다. A씨는 근무를 하면서 영업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앓다 결국 2013년 6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의 부인 B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거절당했다. 근로복지공단 측은 “우울증은 인정되나 자살에 이를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라고 보기 어렵다”며 사망과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B씨는 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는 근로복지공단과 같은 이유로 B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의 유서내용, 자살 과정 등을 종합해 보면 우울증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해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그러면서 "다른 지점장들에 비해 지나치게 과다한 업무를 수행했다거나 회사로부터 지속적인 압박과 질책을 받는 등 특별히 가혹한 환경에서 근무하였던 것이 아니지만 A씨의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편 대법원은 직장에서 수치심, 모욕감 등으로 인해 자살을 한 것도 업무상 재해로 봐야한다고 판결하고 있다. 콘도업체 직원 D씨는 2008년 회사 주인이 바뀌면서 관리직에서 객실부로 발령이 났다. 그는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팀장 밑에서 근무하며 "너는 어떻게 과장을 달았느냐" "분양 한 건 해야하는 거 아니냐"라는 압박을 받았다. 

2010년 8월에는 좋은 방을 배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손님으로부터 질책과 욕설을 들었고, 이후 D씨는 자신이 관리하던 객실에서 목숨을 끊었다. 이에 D씨의 부인은 산재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1·2심은 꼼꼼하고 예민한 성격 등 개인적 요인 탓이 크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갑작스러운 사무 변경과 자존심 손상, 상사와 마찰, 심한 모욕감과 수치심을 유발하는 사건에 직면했고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증세가 유발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며 산재 인정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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