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관계

[친절한판례氏]4개월 근무에 어깨파열…산재처리될까

"의학적 증명 안돼도 추정 가능하면 인정"

박보희 기자 2017.07.16 10:04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날이 더워지면 가장 바빠지는 직업 중 하나가 에어컨 설치 기사다. 지난 3개월간 휴일도 없이 일하던 50대 에어컨 설치 기사가 지난 9일 작업 도중 쓰러진 뒤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 유족들은 과중한 업무가 원인이라고 주장했지만 회사 측은 평소 앓던 지병이 악화된 것으로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맞서고 있다.

근로자가 일을 하다 다치거나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이들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여부는 결국 법원이 '업무'와 '재해'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하는지에 따라 갈린다. 법원은 어떻게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할까.

여러 건설현장을 돌아다니며 작업을 하던 A씨는 왼쪽 어깨가 파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A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용양급여를 신청했고,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A씨가 일했던 건설사는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며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건설사는 "A씨의 근무 기간은 4개월에 불과하고 과거에도 어깨 치료를 받은 의료 기록이 있다. 또 어깨 파열 진단도 계약이 끝나고 2개월 뒤에 받았다"며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1,2심 재판부는 건설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A씨가 건설 현장에서 근무한 경력은 27년에 달하지만, 실제 문제가 된 건설사의 현장에서 일한 기간은 4개월 남짓에 불과한데다, 이곳에서 일하기 전부터 어깨 치료를 받은 의료 기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병이 난 시점이 이 공사 현장에서 근무한 시기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며 업무와 질병 간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업무상 재해 여부는 사건이 일어난 공사현장에서 수행한 업무 뿐 아니라 최소한 산업재해보상법이 적용되는 모든 건설 현장에서 수행한 업무도 포함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2016두56134)

병을 얻은 사업장에서 일한 기간은 4개월에 불과하더라도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할 때는 실제 산업재해보상법이 적용되는 현장에서 일한 모든 기간을 합해서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대법원은 "근무 기간, 사업장 및 구체적 업무 내용, 치료받은 질병의 증상, 원인 및 치료내역 등에 관해 더 심리한 후, 근무할 때 어깨에 어느 정도 부담이 가해졌는지를 면밀히 살폈어야 했다"며 "동시에 장기간에 걸쳐 수행한 모든 업무로 인해 이 병이 발생했거나, 자연적인 진행 속도 이상으로 병이 급격히 악화된 것인지, 과거 치료받은 질병과 이번에 발생한 질병의 연관성에 관해서도 살펴봤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공사현장에서의 업무 만을 기초로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으니, 원심 판결에는 업무상 재해의 인과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단했다.

◇판결팁='업무상 재해'는 업무수행 중 업무때문에 발생한 근로자의 부상, 질병, 장해, 사망 등을 뜻한다. 이에 해당하려면 업무와 재해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다만 그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관련 사정들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 상당한 수준의 인과관계가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면 증명된 것으로 봐야 한다. 또 지병이 있었더라도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했었는데, 과한 업무가 원인이 돼서 질병의 자연적인 진행 속도를 넘어 급격하게 악화됐다면 인과관계가 증명된 것으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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