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할까?

[Law&Life-진짜난민vs가짜난민①] '박해받을 공포' 입증 여부에 따라 운명 갈려

박보희 기자, 김종훈 기자 2017.07.21 05:01
이지혜=디자이너

"저는 동성애자입니다. 성적 성향을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바꿀 수 없었습니다. 이집트에서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무거운 처벌을 받습니다. 제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알려져 형이 납치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집트로 돌아가면 생명이 위험합니다."

이집트 국적의 A씨가 우리나라에 난민 신청을 하며 제시한 이유다. A씨는 자신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 자료는 없었다.

1심을 맡은 행정법원은 A씨의 말을 믿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가 동성애자라 인정할 자료가 없고 관련 지식도 부족하다. A씨가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살았는데 주변에 알려지게 된 경위도 해명이 안 됐다"며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다.

직접 A씨를 법정으로 불러 신문한 2심 법원은 A씨의 말을 믿었다. 재판부는 "면접조사와 법원의 본인신문 진술이 다소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다. A씨는 동성애자로 보인다. 동성애자는 이집트에서 박해받을 위험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난민의 기본 권리와 자유의 광범위한 행사를 보장하는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 취지상 그런 우려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외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 그 자체를 박해의 일종으로 볼 여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단은 또 달랐다. 재판부는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 진술을 확인할 자료도 부족하다.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근거있는 공포'가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 동성애가 공개될 경우 사회적 비난에 직면할 수 있어 숨기는 것은 부당한 제약일 수 있지만 '박해'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며 사건을 돌려보냈다. 결국 A씨는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같은 사건, 같은 진술을 두고 심급마다 판단은 달랐다. 이들의 판단을 가른 건 A씨의 말을 믿을 수 있는지 여부였다. 법원이 난민 신청을 받아들을지 판단하는 기준은 크게 2가지다. '난민 신청 이유가 진짜인가'와 '그래서 정말 박해받을 가능성이 있는가'다.

◇난민 신청 이유, 사실일까?


난민법에 따르면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사회적 신분,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박해받을 수 있는 '근거 있는 공포'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그런 공포로 거주한 국가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기 원하지 않는 외국인을 말한다.

난민 인정 여부를 두고 법원마다 판단이 다른 건 '난민의 특수성' 때문이다. 제3국으로 피신 온 난민이 자신의 상황을 증명할 객관적 자료를 구하긴 쉽지 않다. 대부분의 증거가 도망쳐 온 나라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대개 본국 대사관의 도움을 받는 것도 불가능하다.

난민법은 이 같은 사정을 고려해 증거가 없더라도 '전체적인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 근거로 삼도록 하고 있다. 언어의 차이와 불안한 심리상태, 기억력의 한계 등을 감안해 세부적인 진술 내용이 다르더라도 전체적으로 믿을만 한지 봐야 한다는 얘기다. 결국 법원이 난민 신청 이유를 믿는지 믿지 않는지에 따라 결과는 갈린다.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돌아가야 한다.

방글라데시 국적의 B씨는 줌마인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수배자가 됐다. B씨의 아버지 역시 정부에 저항하다 방글라데시 정부군의 손에 숨졌다. 도피생활을 하던 B씨는 한국에 난민신청을 했다. B씨는 자신의 체포영장과 줌마 토착민 인증서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법원은 방글라데시의 공문서가 위조된 사례가 많아 진정한 공문서로 보기 어렵고, 진술이 일관되지 않다며 B씨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정말 본국에서 박해 받을까?

난민신청자가 자신이 고국을 떠나온 이유들을 증명해 판사의 인정을 받는다해도 남은 고비가 있다. '박해' 가능성이다. 법원이 '근거있는 공포'와 '박해 받을 가능성'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또 다시 바뀐다.

파키스탄에서 온 C씨는 집안 대대로 이슬람 소수 종파인 이흐마디교를 믿었다. C씨는 특히 신앙심이 깊었다고 한다. 파키스탄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정통 이슬람교단에선 아흐마디교를 이단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C씨는 종교 활동 중 괴한으로부터 "종교 활동을 그만두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았고, C씨의 외삼촌은 종교 탄압 과정에서 실제로 살해를 당했다.

C씨의 난민신청에 법원은 아흐마디교가 파키스탄 내에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1회 협박을 받은 것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결국 재판부는 '충분히 근거있는 공포'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며 C씨의 난민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다.

파키스탄 국적의 D씨는 기독교 활동을 하다 괴한으로부터 종교 활동을 중단하라는 협박을 받고 폭행을 당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 D씨는 지속적인 협박에 시달리다 한국 목사의 도움을 받아 한국으로 피신했다. 그리곤 가족들이 여전히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민 신청을 했다.

법원은 D씨가 기독교인이고 지속적인 종교활동을 해 왔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그 정도 활동으로 무슬림들이 끝까지 추적해 제재를 가할 정도의 중요한 위치라보긴 힘들고, 거주지를 옮기거나 적극적인 전도나 봉사활동을 자제하면 극복할 수 있다"며 '충분한 근거있는 공포'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D씨 역시 난민이 되지 못했다.

행정법원의 한 판사는 "어떤 판사라도 실제 도움이 필요한 난민이라면 인정해주고 돕고 싶어 할 것"이라면서도 "주장이 믿을만하면 증거없이도 난민으로 인정할 여지가 있는데, 진술에 모순이 많거나 입증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에는 난민으로 인정해 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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