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검심'과 서초동 칼잡이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정권의 칼잡이' 특수부 검사들, 문재인정부서도 건재···끝나지 않는 정권과 칼잡이의 공생

이상배 기자 2017.08.13 09:36

'바람의 검심'이란 일본 만화가 있다. '전설의 칼잡이' 히무라 켄신이 주인공이다. 19세기 중반 메이지유신에 반대하는 막부파의 수많은 인사들을 암살한 검객으로 그려진다. 물론 가상인물이다. 그렇다고 완전한 허구는 아니다. 당대 일본의 '4대 칼잡이' 중 하나로 불렸던 가와카미 겐사이란 실존인물이 모티프다. 막부 측 사상가였던 사코마 쇼오잔을 백주 대낮에 베어 죽인 사건으로 유명하다.

겐사이는 체구가 아담한데다 얼굴도 곱상하게 생겨 얼핏보면 여자로 착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말수가 적고 목소리도 작고 부드러웠다. 대화할 때 상대방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을 아래로 향할 정도로 숫기가 없었다. 그런데도 성격은 냉혹하기 이를 데 없어 사람을 벨 때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겐사이를 비롯한 유신파 인사들이 교토의 한 식당에서 술을 마셨다. 자연스레 반대세력인 막부파를 비난하는 이야기가 오갔다. 막부파 핵심인사 중 한명의 이름도 거론됐다. 그런데 갑자기 겐사이가 보이지 않았다. 얼마 후 겐사이가 보자기 하나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겐사이가 보자기를 건네며 물었다. "좀 전에 얘기한 게 이놈 맞지?" 보자기 속엔 그 막부파 인사의 머리가 들어있었다.

겐사이는 용병이 아니었다.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확신범'에 가까웠다. 겐사이와 같은 자객들을 '유신지사'라 부른 이유다. 그럼에도 살인이 정당화될 순 없다. 차가운 살인마였던 겐사이도 결국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어느 순간 살인을 중단한다. 그는 자신이 따르던 유신세력이 개국정책을 펴자 이에 반대하다 결국 유신세력의 손에 참수된다.

메이지시대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서울 서초동에도 이런 '칼잡이'들이 있다. 정권의 반대파 또는 정권에 밉보인 인사들을 정치적으로 제거하는 데 앞장서온 검찰의 특별수사부 검사, 이른바 '특수통'들이다. 스스로를 '칼잡이'라고 부르는 이들이다. 그들이 반드시 정권의 하명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건 아니다. 때론 정권의 의중을 읽고 스스로 수사에 나서기도 한다. 이른바 '표적수사'다. 그리고 수사 대상은 반드시 재판에 넘겨진다. 재판 결과에는 유죄도 있지만, 때론 무죄도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의해 배임수재 및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됐으나 결국 1·2심과 대법원에서 내리 무죄 판결을 받은 민영진 전 KT&G 사장이 그런 경우다.

그러나 재판 결과는 중요한 게 아니다. 검찰이 수사하고 기소하는 순간 그는 이미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검찰에 소환돼 포토라인에 서는 순간 평생 쌓아온 정치적 지위와 사회적 명성은 모두 사라지고 만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것 자체가 목적일지도 모른다. 검찰의 조사를 받던 중 해서는 안 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도 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구속영장 청구 문제를 놓고 시간을 끄는 사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영혼의 벗'을 대검 중수부의 손에 잃은 문재인 대통령의 눈에 특수통들이 어떻게 비쳤을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문재인정부 출범과 함께 특수통들이 찬밥 신세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던 이유다. 그렇잖아도 문 대통령의 공약대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가 신설되면 검찰 특수부서는 기능 중복으로 역할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터다.

그러나 실제로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달랐다. 특수통들이 검찰총장 뿐 아니라 서울중앙지검장에 서울중앙지검 1·2·3차장까지 모조리 꿰찼다. 공안수사 라인을 책임지는 2차장 자리는 그동안 공안통들의 몫이었지만 이마저도 특수통에게 돌아갔다. 법무부는 "적폐척결 수사를 적극 수행하기 위해 전문성을 토대로 적임자를 발탁했다"고 했다. '적폐척결'이 특수통들의 동아줄이 돼 준 셈이다. 

특수부 칼잡이들이 과거 정권의 배려를 받았던 건 그만큼 정권이 칼잡이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예외가 노 전 대통령이었다. 이번 정부는 단지 그런 예외가 아닐 뿐이다. 정권과 칼잡이들의 공생은 그렇게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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