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문무일 검찰총장의 사과가 씁쓸한 이유

한정수 기자 2017.08.17 11:28
"검찰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일부 시국사건 등에서 적법절차 준수와 인권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이 자리를 빌려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8일 기자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그는 구체적으로 인민혁명당 사건,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등을 예로 들었다. "사건 당사자나 사건 관계인의 유족을 찾아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고도 했다.

검찰총장이 직접 검찰의 과오에 대해 사과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문 총장은 간담회 당시 긴장한 듯 손을 주무르면서 준비해 온 문서를 읽었다. 경직된 표정과 말투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 사과의 진정성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법조계 안팎의 '검찰개혁' 목소리에 부응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조치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문 총장의 사과는 불과 이틀 만에 빛을 바랬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담당했던 검사 2명이 지난 10일 있었던 검사 정기 인사에서 검사들이 선호하는 자리로 '영전'한 탓이다. 자백까지 한 진범이 구속되지 않게 영향력을 행사한 검사 A씨는 법무부 과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사건을 최종적으로 무혐의 처리해 진범에게 자유를 준 검사 B씨는 부부장검사로 승진했다.

16세에 불과했던 소년이 10년간 억울한 수감 생활을 한 사건이다. 검찰과 경찰은 불법적인 강압 수사를 통해 사건 목격자였던 소년에게 택시기사 살인범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수사기관의 잘못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수사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진범을 풀어주는 등 적극적으로 사건을 조작했다. 지난해말 재심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무려 1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16세 소년은 청춘을 모조리 도둑 맞았다.  

과거 수사가 잘못됐다고 사과하면서 뒤로는 책임자를 문책하긴 커녕 영전시키는 검찰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진정한 사과의 의미가 무엇인지, 검찰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사회부 법조팀 한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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