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노동법] 사택에서 자다가 화재로 숨지면…업무상 재해?

백인성 (변호사) 기자 2017.08.16 07:29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회사가 제공한 사택에서 근로자에게 발생한 사고가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업무가 끝나고 회사가 제공한 사택에서 잠을 자던 중 원인불명의 화재로 사망한 사례(업무상 재해의 인정 요건)를 다룬 대법원 판결(2014두46128)이 있어 소개해드립니다.

A씨는 지난 2012년 토요일 저녁 동료들과 술을 마신 후 다음날 새벽 1시쯤 회사가 제공한 사택으로 귀가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새벽 사택에서 원인 불명의 화재가 발생했고, 당시 숙소에서 잠을 자던 다른 근로자들은 대피했지만 A씨는 미처 불을 피하지 못하고 사망했습니다. 

이 사택은 회사가 원거리에 거주하는 근로자들에게 제공한 것으로 사업장과 900m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회사는 사건 숙소에 냉장고, 텔레비전, 세탁기 등을 비치하였고, 연료비, 수도세, 전기세 등의 공과금을 부담하였으며, 청소 담당 인력을 파견해 정기적으로 숙소를 청소하게 하였습니다. 사택은 5명의 근로자가 나눠 사용하였고 다른 근로자들도 수시로 출입하였습니다. A씨는 일요일에 휴일 당직 근무가 예정돼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A씨는 평소 일이 많을 경우 망인이 다른 직원들의 편의를 위해 휴일 당직 근무를 대신 서기도 하였습니다.

A씨의 유족들은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근로복지공단에 청구하였으나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거부했고, 유족들은 행정법원에 급여부지급처분취소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근로자가 업무시간 종료 후 사업주가 관리하는 시설물을 이용하거나 그 시설물 내에서 어떠한 행위를 하다가 재해를 당한 경우, 그 행위가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위한 요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 행위가 근로자의 본래의 업무행위이거나 업무의 준비행위 또는 정리행위, 사회통념상 그에 수반되는 생리적 행위이거나 필요한 것으로 인정되는 행위, 사업주의 지시나 주최하에 이루어지는 행사 또는 취업규칙, 단체협약 기타 관행에 의해 개최되는 행사에 참가해 한 행위라는 등 그 행위과정이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다고 볼 수 있거나(사안의 업무관련성) △또는 그 시설의 결함이거나 사업주의 관리 소홀로 인해 재해를 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때(공간의 지배관리성)라는 요건입니다.

그러나 이 사안에서는 두 요건 모두 인정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수면행위가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는지에 대해 "업무가 종료한 이후의 시간은 기본적으로 근로자의 사적인 영역으로서 근로자가 이를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이 보장돼 있으므로, 망인이 업무 종료 이후 숙소에서 수면을 취한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수면행위는 사업주의 지배․관리 바깥의 행위이고, 수면이 사업주가 제공한 숙소에서 이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는 없다는 취지입니다.

대법원은 나아가 '사택'에 대한 사용자의 지배관리성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회사가 제공한 숙소는 그 사업장의 지리적 위치나 주변 여건상 출퇴근이 부적당해 제공한 것이 아니라 단지 원거리 거주 근로자들의 출퇴근 편의를 위해 제공한 것이어서 근로자들이 반드시 숙소에서 거주할 필요성은 없었다"면서 "망인의 행위가 본래의 업무행위이거나 업무의 준비행위 또는 정리행위, 사회통념상 그에 수반되는 생리적 행위이거나 필요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합니다.

또한 사고가 숙소의 결함이나 사업주의 관리 소홀로 발생한 것도 아니며 사용자가 숙소에 집기를 비치하거나 공과금을 납부하고 정기적으로 청소를 하였다고 해서 위와 같은 사정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본 사안은 사택 내 근로자에게 발생한 사고가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판단한 드문 사례라는 점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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