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떼이고 맞아도 이직 못해…노예가 된 코리안드리머

[Law&Life-무너진 코리안드림 ①] '노예허가제'가 된 '고용허가제'

양성희 기자 2017.08.18 07:54

"내 이름은 솔롱고스. 무지개라는 뜻이에요. 몽골 사람들은 한국을 솔롱고스라고 부르죠.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나라, 무지개처럼 꿈을 쫓아 여기 왔어요."

"나 한국말 다 알아. 아파요. 돈 줘요. 때리지 마세요. (중략) 나 한국말 다 알아. 반말하지 마세요. 욕하지 마세요. 못된 말하지 마세요." 

10년 넘게 흥행 행진을 이어가는 뮤지컬 '빨래'에서 외국인근로자 솔롱고스와 그의 친구 낫심은 이렇게 노래한다. 우리 땅엔 솔롱고스와 낫심이 100만명가량 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취업자는 96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취업자와 실업자를 포함한 외국인 경제활동 인구는 100만5000명으로 기록됐다.

무지개 같은 '코리안드림'을 안고 찾아온 이들이 결국은 칠흙 같은 현실에 직면하며 좌절하고 있다. 스물일곱살 네팔 청년 깨서브 스래스터는 지난 6일 새벽 "세상과 작별 인사를 하겠다. 통장에 있는 돈 320만원은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길 바란다"는 글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에서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허가가) 안 됐다"고 썼다. 

이직의 자유는 다른 외국인근로자에게도 보장되지 않는다.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하는 우즈베키스탄인 A씨는 끼니를 잘 챙겨먹을 수 없는 데다가 제대로 씻을 만큼의 물도 제공받지 못하자 사업장을 바꿔달라고 했지만 돌아온 건 겁박뿐이었다. 사장은 "사업장 이동은 안 된다. 그냥 불법체류자로 만들어버리겠다"고 했다. 

이들의 발목을 잡는 건 '고용허가제'다. 2004년 8월 시행된 이 제도에 따르면 이직 등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대부분의 권한은 사용자가 갖는다. 고용허가제가 '노예허가제' 또는 '현대판 노예제'로 불리는 이유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고용허가제를 통해 일을 하는 외국인근로자는 지난해 하반기 기준 22만1900명에 달했다. 

가장 크게 논란이 되는 건 사업장 변경 문제를 규정한 외국인고용법 25조다. 이 조항은 근로자 마음대로 사업장을 바꾸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사업주가 이를 악용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근로자는 괴롭힘을 당해도 사업장을 쉽게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진우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 사무차장은 "모든 권리가 고용자에게 주어진 '고용허가제'가 아닌 노동자가 권리 주체가 되는 '노동허가제'를 도입했어야 마땅하다"며 "사업장 이동의 자율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사업장을 바꿀 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변경 신청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우선 횟수 제한이 있다. 원칙적으로 외국인근로자는 3년의 취업활동기간 중 최대 3번 직장을 옮길 수 있다. 사업장 변경 사유로 정하고 있는 항목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임금 체불 또는 지연의 기준을 '2개월분 이상의 임금 전액을 받지 못하거나 임금의 30% 이상을 받지 못한 경우'로 정하고 있는 것이 한 예다.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동행(감동) 소속 이현서 변호사는 "사업장 변경 기준이 너무 엄격한 데다 변경 사유에 해당하는지를 따지는 조사 절차가 사업주 위주로 돌아가는 점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 변호사는 이어 "외국인근로자들은 한국어 능력도 부족하고 업무 강도가 높다보니 증거를 수집할 여력도 없는데 입증 책임을 근로자에게만 떠넘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업장 변경권을 외국인근로자에게 주거나 변경 사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외국인고용법을 고친다면 외국인근로자들의 삶이 나아질까? 이주인권단체 관계자들은 "시작에 불과할 뿐 정비할 제도가 한둘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외국인고용법상 근로자가 해고된 경우 사용자는 15일 이내에 근로계약을 종료하면 되는데 마지막날까지 제대로 통보를 하지 않아 근로자로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섹알마문 서울·경기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은 "15일간 다른 일자리를 못 구한채 손놓고 있는 경우도 있다"며 "또 다른 공장에 가도 된다는 얘기를 듣고 옮겼는데 이전 사업주가 약속을 깨고 거짓말로 '직원이 도망갔다'고 신고할 경우 난감해진다"고 말했다. 

또 농어촌지역에서 일하는 이들은 휴식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은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 1주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지만 농수산업 등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이 법 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외국인근로자들은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하우스에서 생활하며 숙식시간 외엔 일만 하는 게 현실이다. 

한 변호사는 "일터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있다보니 비닐하우스 같은 불법건축물에 숙식공간을 꾸려놓는데 문제는 임금에서 숙식비를 떼어가는 것"이라며 "따지고보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근로기준법에 '사용자는 기숙사와 관련, 근로자의 건강, 생명 유지에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이것으론 충분하지 않다"며 "외국인근로자들의 주거권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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