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 쉬운 것부터 하자

황국상 기자 2017.08.20 14:34
"한국이 IT(정보기술) 강국이라고요?" 최근 개업한 A변호사가 비웃듯 말했다. 판결문 검색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그는 "주요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례는 상대적으로 많이 공개돼 있지만, 1·2심 등 하급심 판결문은 거의 공개돼 있지 않다"며 "하급심 결과를 확인하려면 법원도서관의 판결문 검색대를 찾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판결문 검색대는 서울 서초동 법원도서관에 마련돼 있지만 이를 이용하려면 최소 2주일 전엔 예약을 해야 한다. 검색대가 단 4대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한달 전 예약이던 게 지난 4월부터 '2주일 전 예약'이 가능해졌다. 변호사들은 검색대의 수를 늘리거나 주요 지방변호사회에 검색대를 설치해 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지만 법원 측은 예산 문제를 거론하며 난색을 표해왔다.

판결문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은 단지 변호사들의 불편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들에게 소송을 맡긴 국민들도 효율적으로 재판을 받을 수 없게 된다. 판결문은 유사 재판의 가이던스나 다름없는데, 판사들은 모두 볼 수 있는 판결문을 변호사들은 보기 어려우니 변론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대법원이 운영하는 종합법률정보시스템에 공개되는 판결은 대법원 전체 판결의 3.2%에 불과하다. 하급심 판결까지 포함할 경우 공개된 판결문은 단 0.003%에 그친다.

이에 금 의원은 지난 2월 판결문 공개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민·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금 의원은 "헌법 제109조는 재판의 심리·판결을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현행법도 일정 경우를 제외하고 누구든 확정사건의 판결문을 열람·복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판결문 공개가 확대되면 사법절차의 투명화로 재판에 대한 국민신뢰 향상에 기여하고 국민들이 소송을 제기하기 전 유사판례를 확인함으로써 불필요한 소송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A변호사는 "사법개혁이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데, 뜬구름 잡는 식의 이야기보다 판결문 공개 확대처럼 당장 국민들의 불편을 줄이는 실천이 진정한 사법개혁이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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