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친절한판례氏] 수상한 보험가입자…계약 없던 걸로?

"부정한 보험계약 선량한 풍속 해쳐…계약 무효 가능"

박보희 기자 2017.09.11 05:00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A씨는 2013년 운동을 하다 다쳤다며 보험금 81만원을 청구했다. 그런데 B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그러면서 A씨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가짜로 사고를 내고 장기간 치료를 받기도 했다며 보험 계약은 무효라고 소송을 냈다.

다치고 병들었을 때를 대비해 드는 것이 보험이다. 그런데 치료비를 달라고 하니 보험사는 보험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A씨의 청구를 보험사는 왜 받아주지 않는걸까? 보험 계약이 무효가 될 수도 있는걸까?

A씨가 보험에 든 것은 2008년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A씨는 2005년부터 2010년 사이 12개의 보험에 들었다. A씨의 아내 또한 12개의 보험에 들었다. 2008년 한해 동안 이들이 낸 보험료는 무려 1500만원. 연수입 1700만원의 대부분을 보험료로 낸 셈이었다. 또 지난 5년여간 각종 사고로 70여회에 걸쳐 5400여만원을 보험금으로 받았다. 

보험사는 이를 근거로 "A씨가 다수의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사고를 가장하거나 장기간 치료를 받아 보험금을 취득할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며 "사회질서에 반한 법률행위로 보험 계약은 무효이고 보험금 지급 의무는 없다"고 주장했다.

A씨의 상황을 어떻게 판단했는지에 따라 법원 판결은 달라졌다. 1심 법원은 △5년여에 걸쳐 보험 계약이 고르게 분포돼있는 점 △보험모집인으로 일하는 어머니의 가입 실적을 올려주기 위해서인 점 △실제 군복무 중 중상해를 입어 큰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보험금을 부당하게 얻어낼 목적으로 보험에 가입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보험 계약은 무효'라며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A씨가 가짜 보험금을 타내려고 보험에 든 것으로 판단해 계약 무효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보험계약자가 다수의 보험계약을 통해 보험금을 부정 취득할 목적으로 보험계약을 체결한 경우 보험 계약은 민법 제103조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보험계약을 악용해 부정한 이득을 얻으려는 사행심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 △'합리적인 위험의 분산'이라는 보험 제도의 목적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점 △다수의 선량한 보험가입자들이 손해를 봐서 보험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는 점 등을 이유로 설명했다.

그렇다면 부정하게 보험금을 타내려고 계약을 했는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대법원은 직접적으로 인정할 증거가 없어도 △보험 계약자의 직업과 재산상태 △보험계약 체결 시기와 경위 △보험계약의 규모와 성질 △보험계약 체결 후의 정황 등에 따라 추정할 수 있다고 본다.

대법원은 △경제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부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보험료를 많이 내야 하는 경우 △이유없이 많은 보험에 가입했을 경우 △보험에 들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집중적으로 보험금을 청구해 수령한 경우 등은 의심스럽다고 보고 있다.

◇관련조항

민법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제110조(사기,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①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
②상대방있는 의사표시에 관하여 제삼자가 사기나 강박을 행한 경우에는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 한하여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
③전2항의 의사표시의 취소는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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