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일반

[친절한판례氏] 누가 때리면 무조건 맞고 있어야 할까?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회통념상 허용' 범위 저항은 정당방위"

박보희 기자 2017.09.18 05:05
임종철 디자이너

"누가 싸움을 걸며 때리더라도 맞고만 있어야 한다. 맞서 싸우다가는 쌍방폭행으로 처벌받기 십상이다."

법적으로 정당방위가 인정받기 워낙 어려워 나오는 얘기들이다. 이런 이유로 누군가 맞고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순간 선뜻 나서지 못한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돕겠다고 나섰다가 폭행죄로 처벌을 받지 않을까 걱정돼서다.

누군가 작정하고 때리더라도 정말 맞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정당방위는 정말 말로만 존재하는 '신화 속 유니콘'같은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나아내씨(가명)씨는 남편이 그여자씨(가명)와 노래방에서 나오는 것을 봤다. 이후 남편과 그여자씨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의심을 하고는 아들과 함께 그여자씨네 집에 찾아갔다. 아들 두 명과 함께 찾아온 나아내씨를 보고 혼자있던 그여자씨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여자씨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나아내씨는 남편을 불렀고, 별 문제 없을테니 문을 열어달라는 남편의 말에 그여자씨는 문을 열어줬다.

문이 열리자 나아내씨와 아들들은 신발을 신은채 집 안으로 들어가 그여자씨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얼굴과 가슴을 때리고 걷어찼다. 이들의 폭행으로 전치 3주 가량의 상처를 입은 그여자씨는 이들에게서 겨우 도망쳐 112에 신고를 했고 경찰 출동으로 싸움은 무마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그여자씨도 나아내씨와 아들을 손톱으로 할퀴어 각각 전치 2주에 이르는 상처를 입혔다는 점이다. 그여자씨는 상해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여자씨의 행위는 정당방위일까 쌍방폭행일까.

검찰은 그여자씨가 나아내씨의 남편과 부적절한 관계를 갖는 등 사건 발생의 원인을 제공했고, 결과적으로 서로 비슷한 상해를 입었다는 점, 그여자씨가 공격을 미리 예상하고 반격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점에 비춰 상해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그여자씨의 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불법적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벗어나기 위한 저항수단으로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 하다"고 판단했다.(2009도12958)

대법원은 맞붙어 싸움을 하는 사람 사이에는 공격과 방어가 연달아 일어나고, 방어를 위한 행동이 동시에 공격이 되는 양면적인 성격을 보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만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보통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서로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한쪽 당사자가 일방적으로 공격을 했고, 상대방은 이런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벗어나기위해 사회관념상 허용될 수 있는 정도로 힘을 행사했다면 죄가 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혔다. 다만 자신을 방어하는 행동이 방어를 넘어 '적극적인 공격'이라고 볼만한 정도는 아니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실제로 '방어' 행위가 오히려 '공격'에 해당할 수준으로 도를 넘어설 경우 정당방위로 인정받기는 힘들다. 회식 후 노래방에 가자는 제안을 거부하자 맥주병으로 자신을 때린 직장 동료의 얼굴을 주먹으로 수차례 때려 숨지게 한 사건에서 법원은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법원은 "부당한 침해행위를 막을 목적으로 폭행이 이뤄진 것으로 보이지만 침해 행위가 상당히 완화된 상황에서 폭행을 행사해 사망까지 했다"며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한도의 방위행위에 해당하기 어렵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경찰은 정당방위 여부를 가리기 위한 지침을 만들어 사용 중이다. 이 지침에 따르면 폭행사건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되려면 △상대방의 부당한 침해가 먼저 있을 것 △방위행위가 침해행위 종료 전 일어날 것 △방위행위가 침해행위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일 것 △먼저 도발하지 않을 것 △방위 수단이 필요한 범위에 속할 것 △방위 행위로 인해 침해되는 법익이 현저히 커서는 안될 것 등 6가지 요건에 해당해야 한다.

◇관련 조항

형법

제21조(정당방위)

①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③전항의 경우에 그 행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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