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돼. 안 바꿔줘"…'호통판사'에 '소년법 폐지' 물었더니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19곳에 가정(?) 꾸린 이유

박보희 기자 2017.09.18 10:34

"안돼. 안 바꿔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가 창원지법 부장판사였던 4년 전, 법정에 서서 '한번만 용서해 달라'는 청소년에게 소년보호처분 중 가장 무거운 '10호처분'(2년간 소년원 송치)을 내리며 엄하게 꾸짖는 모습이 방송을 탄 이후 천 판사에게는 '호통 판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안돼. 안 바꿔줘"는 일종의 유행어처럼 쓰일 정도다.

천 판사가 소년보호재판을 맡은지 올해로 8년째다. 창원에서 처음 소년재판을 맡았던 천 판사는 부산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여전히 소년재판을 맡고 있다. 보통 판사들이 1년 정도 소년재판을 맡는 것을 생각해보면 '만년소년'이라 불릴만 한 기간이다. 그동안 천 판사를 거쳐간 아이들만 1만2000여명에 이른다.

◇"소년보호처분 2년은 짧지만, 소년법 폐지는 신중해야"

최근 청소년 강력범죄 사건이 잇달아 드러나며 미성년자 처벌 연령을 낮추고 형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성년자에 대한 처벌 완화를 규정한 소년법 폐지 요구까지 나온다. 8년간 지척에서 일명 '비행청소년'을 지켜본 천 판사의 생각은 어떨까. 천 판사는 처벌은 엄해야 한다면서도 소년법 폐지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미성년자는 술, 담배를 못사고 투표권도 없죠. 보호자 동의 없이는 할 수 없는 다양한 제약을 두고 있어요. 성인에 비해 경험도 부족하고 미성숙한 부분들이 있으니 보호해야한다는 공감대에서 만들어졌죠. 처벌 수위를 높이자는 주장은 논의할만 해요. 소년보호재판은 10호처분을 받아 소년원에 가도 평균 1년6개월이면 나가는데 습관을 고치고 교정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소년법 자체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리니 봐줘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천 판사는 소년범들에게 엄한 처벌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아이들은 천 판사에게 '천10호'라는 별명을 붙였다. 천 판사는 전국에서 청소년들에게 10호처분을 가장 많이 내린 판사다. 다만 '아이들은 착하고 순진할 것'이란 어른들의 기대를 져버렸다는 이유로 오히여 더 큰 비난을 받고 강한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사실 미성년자라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생각없이 저지르는 경우가 많죠. 청소년 범죄의 특성이기도 하죠."

SBS '학교의 눈물 1부-일진과 빵셔틀' 편 중

◇"'풍선' 같은 '학교폭력-학교 밖 폭력'…엇갈린 원인과 대책"

천 판사는 청소년 범죄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사건을 정확히 살피고 싵태를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천 판사는 '학교 내 폭력(학교폭력)'과 '학교 밖 폭력'은 '청소년'이 주체가 된다는 점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사건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사회도 청소년 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학교폭력 대책을 세우지만, 청소년 잔혹 범죄의 많은 수는 '학교 밖 폭력' 사건이라서 원인과 대책이 엇갈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피해자가 학생이면 무조건 학교폭력으로 보고 대책을 세워요. 하지만 학교 안에서 잔혹한 폭력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어요. 부모와 교사가 있으니까요. 진짜 심각한 것은 학교 밖이거든요. 하지만 대부분 정책은 학교 안 학생들을 생각하고 만들어요. 지금까지 학교폭력 대책은 학교 안 문제아들을 밖으로 내쫓는 식이었죠."

천 판사는 학교 내 폭력과 학교 밖 폭력을 '풍선'에 비유했다. 학교 폭력에 대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문제'를 없애는 것, 즉 학교폭력을 일으키는 문제아들을 밖으로 쫓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 폭력에 강경 대응할수록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을 학교 밖으로 밀려난다. 학교에서 밀려난 아이들이 많아질수록 학교 밖 폭력 사건은 늘고 수위는 높아진다.

"풍선을 누르는 것과 같아요. 한 쪽이 줄면 다른 쪽이 늘죠. 학교에서 쫓겨난 아이들을 대안학교 같은 곳에 모아놓지만 그 이후에는 대책도, 지원도, 관심도 없어요. '일당백'인 아이들이 모여있으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더 높겠죠? 그럼 이들을 교육하기 위한 예산과 인력 등을 더 지원해야죠. 하지만 쫓아내놓고 보이지 않으니 그냥 두는거에요."

보이지 않던 아이들은 '사고'를 치고 나서야 보인다. '투명인간'이던 아이들이 모습을 드러낼 정도의 '사고'는 잔혹하고 충격적이기 마련이다. 천 판사는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찾아 나서야돼요. 학교마다 장기결석 중인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얘들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몰라요. 2015년에 교육청에서 장기결석자 아이들 500명 명단을 받아서 활동가들과 찾아 나서는 프로젝트를 했어요. 여관방을 뒤지고 조폭이랑 싸워가면서 200명을 찾았어요. 300명은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이 아이들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돼요." 


◇"가정에도 학교에도 속하지 못한 청소년…가해자이면서 피해자들"

사건이 터지면 여론은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 개개인을 비난하고 강력한 처벌을 요구한다. 이들이 사고를 치기 전의 '삶'과 이후의 '삶'을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대책을 논하기 전 의문이 남는다. 스무살도 채 안된 아이들은 왜 이런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걸까. 천 판사는 '외로움'과 '공감능력의 부족'을 말했다. 그리고 그 이유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감은 사람과 관계 속에서 배우는건데 가정에서는 부모가 일하느라 바빠서, 또 여러 이유로 혼자자란 아이들은 내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어떤 결과를 낳을지를 몰라요. 그래서 생각나는데로 말하고 행동하죠. 학교는 가정에서 배운 사회성, 관계 능력을 확장하고 적용하는 곳인데 가정에서 배우지 못했으니 그게 안돼요. 그래서 학교에서도 밀려나죠.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소외된 아이들에게 남은 건 비슷한 상황의 또래 밖에 없어요. 자기들끼리 무리지어 다니며 그 관계를 붙잡기 위해 애를 써요. 그 과정에서 내 친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폭력을 쓰고, 친구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원조교제를 해요.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이해가 안되죠. 그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봐야 보여요."

밖으로 내몰린 아이들은 또래 집단 안에서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천 판사가 제안하는 해결책은 이 아이들에게 '가정'을 만들어 주자는 것. 실제 2010년 창원지법 근무 시절 사법형 그룹홈인 '청소년 회복센터'를 제안해 만들었다. 현재 전국 19곳의 청소년 회복센터가 운영 중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줄 '가정' 필요"

'청소년 회복센터'는 일종의 대안 가정이다. 부모 역할을 하는 민간인이 법원에서 보낸 10명 남짓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타인과 관계맺는 법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기본 거주 기간은 6개월이지만 상황에 따라 늘어나기도 한다. 센터의 가장 큰 역할은 청소년 범죄가 주로 발생하는 야간 시간에 아이들이 할 일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효과는 가시적이다. 2015년 전국 19살 미만 소년범 재범율이 12%를 넘어섰을 때 창원지법 관할 소년범 재범율은 8.51%로 전국 최저를 기록했다. 지금도 법원과 센터가 주관한 아이들로 구성된 축구팀이 운영 중이고, 100여명이 참여하는 합창 모임도 진행 중이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도 자신에게 10호처분을 내린 천 판사와 함께 하는 축구와 합창 모임에는 스스로 찾아온다. 학교와 센터, 뭐가 다른 걸까.

"여기에서는 아이들을 존중해줘요.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나쁘다 비정상이다 하지 않아요. 잘못된 것은 따끔하게 혼내주지만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죠. 나쁜 습관을 고치는 것은 어려워요. 스스로를 돌아보세요. 어른들도 어려운데 아이들도 똑같아요. 시간이 필요해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진 못하더라도 스스로 충동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거죠. 그것 만으로도 달라질 수 있어요."

◇"재범율 낮춘 대안가정 '청소년 회복센터'…정부 지원 필요합니다"

전국 19곳에 '청소년 회복센터'가 만들어졌고 성과도 거두고 있지만, 사실상 운영자들의 희생 없이는 운영이 힘들다. 24시간 아이들과 거주하며 부모 역할을 해줘야 하는 일이지만, 청소년 1명 당 매달 50만원인 법원 지원금이 유일한 지원이다. 10명의 아이들이 거주할 공간 마련부터 운영까지 모두 지원자 개인이 담당한다. 

정부 지원은 없다. 부족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천 판사는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후원자를 찾는다. 센터 운영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다행히 지난해 '청소년복지지원법'이 개정되면서 정부 지원을 받을 근거는 만들어졌다. 센터 운영자들과 천 판사는 내년에는 기획재정부가 예산 편성을 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올해 국회에서 내년 예산을 편성해주지 않으면 이들은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 아이들은 사회의 가장 약자에 속해요. 미성년자인데다 '비행' 청소년이라는 낙인이 찍힌 순간 어떤 지원이나 도움 받을 자격도 없는 '나쁜'사람이 돼버리죠. 왜 이런 아이들을 위해 돈을 써야 하느냐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이미 비행을 저질렀으니 그냥 그렇게 살라고 둬야 할까요. 이 아이들이 크면 성인이 되고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겠죠. 또다른 문제로 이어질 수 있어요. 이들을 사회 안에서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정부가 할 일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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