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 안 한다" 각서 쓰고 '맞짱'…처벌 받을까?

[박보희의 소소한法 이야기] '형사처벌 안한다' 합의서 써도 다치게 하면 '처벌'

박보희 기자 2017.09.21 05:00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서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쓰고 싸우면 처벌을 받을까요? 합의서를 썼으니 괜찮을까요?

지난 3월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A씨와 B씨는 '서로 행사한 폭력에 어떤 형사처벌도 원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합의서를 쓰고 '맞짱'을 뜨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진짜 주먹다짐을 벌였는데요.

문제는 싸움 이후였습니다. 싸움 중 머리를 다친 B씨가 결국 숨지고 말았습니다. A씨는 상해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결국 징역 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법원은 양쪽이 합의서를 썼다는 점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판결문에 밝혔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 합의 여부를 떠나서 일단 사람이 사망까지 했으니 처벌은 불가피한 일이겠죠. 그런데 질문이 남습니다. '서로 처벌하지 않겠다'고 합의를 해도 '때리면' 처벌을 받을까요? 아니면 당사자간 합의를 했으니 괜찮은 일일까요?

일단 치고받고 싸우다 경찰에 걸리면 폭행 현행범으로 처벌을 받습니다. 다만 서로 합의를 하면 처벌받지 않는데요. 폭행은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해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히면 형사소송 절차가 중단됩니다. 형사기관 마음대로 처벌할 수 없다는 얘기죠.

그런데 싸우다가 심하게 다쳤다면 어떨까요. 폭행은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지만, 사람을 다치게 하는 '상해'는 다릅니다. 상해죄는 당사자간 합의를 해도 형사기관이 나서서 처벌할 수 있습니다.

재경지법의 A 판사는 "단순폭행은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해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지만 상해는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누군가의 신체를 손상시켰다면, 즉 상처를 입히거나 다치게 했다면 사전 합의나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처벌을 받는다는 얘기인데요.

법무법인 바른의 박윤정 변호사는 "피해자가 폭행에 승낙하는 사전각서가 있었다면, 위법성이 조각(배제돼 없어짐)돼 범죄가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는 신체가 손상되는 상해까지 이르지 않았을 경우"라며 "상해의 폭은 굉장히 넓어서 어떤 식으로든 신체가 손상됐다면 상해로 볼 수 있어서 처벌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상해죄는 '고의로 다른 사람의 신체를 손상시키는 범죄'를 말하는데요. 머리카락을 자르는 등 외모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상해에 해당하고, 외모가 변하지는 않지만 복통이나 수면장애, 상대방을 깜짝 놀라게해서 정신장애를 일으키는 것도 상해에 해당합니다. 작정하고 싸우려고 합의까지 했는데 상해로 이어지지 않기가 오히려 힘들 수 있다는 거죠.

서울의 B판사는 "피해자가 칼로 찌르라고 해서 찔렀다고 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느냐"며 "상해를 입었다면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처벌을 받는다. 생명과 신체에 대한 결정은 피해자 본인이 합의를 했어도 괜찮은 일이 아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사전합의서가 있다면 양형에 고려할만한 사유는 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폭행에 대한 '합의서'는 유효할까요. 합의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형사와 민사의 차이가 있어 형사 사건에 적용하기는 힘들긴 하지만 민법 제103조에 따르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합니다. 서울의 C판사는 "신체포기각서가 의사표시로 효력을 갖기 어려운 것처럼 때리고 싸우는 내용의 합의서가 법적으로 효력을 가질지는 살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합의서나 각서를 썼더라도 남을 다치게 하면 처벌을 받는다는 얘기입니다. '합의서'만 믿고 폭력을 휘둘렀다간 돌이킬 수 없는 후회만 남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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