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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많고 판사는 적고…"AI에 재판 보조 맡기자"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 심포지엄-② 재판제도 개선] 美·中은 이미 재판에 AI 활용…"피해자·피고인도 재판 당사자로 인정해야"

박보희 기자 2017.09.20 16:06

"판사가 내 사건을 제대로 살펴보긴 했을까."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국민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걱정이다. 판사 1명이 한해 평균 7000건에 가까운 사건을 처리하는 현실에서 이런 우려는 당연하다.

판사는 적고, 사건은 넘치는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재판에 인공지능(AI)을 적극 활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20일 서울 서초구 쉐라톤 서울 팔래스 호텔에서 머니투데이 '더엘'(the L)과 '네이버 법률'의 공동주최로 열린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 심포지엄에선 이밖에도 효율적이고 공정한 재판을 위한 다양한 제언들이 쏟아졌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사법행정 개편' 세션에 이어 진행된 '재판제도 개선' 세션에선 판사 출신 변호사 2명이 발제를 맡았다. 김상준 법무법인 KS&P 대표변호사가 '재판제도의 현황과 문제점', 성창익 법률사무소 로움 변호사가 '국민의 의한, 국민을 위한 재판'에 대해 각각 발제했다. 또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조현욱 더좋은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최영승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한양대 로스쿨 교수), 오용구 부장판사(사법연수원 교수),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美·中은 이미 재판에 AI 활용"

이날 토론에 참여한 법조계 전문가들은 판사 한명이 맡는 사건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 재판에 대한 국민적 불신의 원인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판사 1인당 사건이 많다보니 사건당 재판 시간이 짧아지면서 재판 당사자 입장에선 할 말도 다 못하고 재판이 끝나는 경우가 많아 불신이 쌓인다는 얘기다. 그러나 해법을 놓고는 의견이 갈렸다.

성 변호사는 "판사 1인당 인구가 독일은 4000여명 수준이지만 한국은 1만7000여명에 달한다"며 "이 때문에 정작 재판은 마음놓고 말할 틈도 없이 짧게 진행되고 '5분 재판'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판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 변호사는 "퇴직 법관을 파트타임 법관으로 임명하는 등 다양한 근무 형태를 도입하고 대법관을 늘려 상고심 사건 부담을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반면 판사 수를 늘리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오 판사는 "대법관 증원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대법관이 늘면 전원합의체 구성이 어려워져 중요 문제에 대한 정책판단 기능, 법령 해석 통일 기능이 축소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 역시 "하급심 강화를 위해 법관 증원의 필요성은 공감한다"면서도 "대법원의 경우 정책법원화의 실익이 더 크고, 장기적으로 대법원은 헌법사건과 법의 통일적 해석, 입법적 보충을 위해 필요한 사건 등을 제한해 받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판사들이 과중한 업무를 지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재판 당사자들이 재판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는 만족감, 자신의 말을 법관이 경청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충족돼야 재판 결과에 승복하고 사법부를 신뢰하게 된다"며 "법관들이 사건 하나하나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전문법관을 양성, 전문심리위원제도를 활성화 등이 필요하다"고 봤다. 
판사를 늘리는 대신 'AI'를 재판보조 수단으로 활용해 판사들의 업무 부담을 줄이자는 대안도 나왔다. 최 교수는 "최근 중국에서 재판에 AI를 보조수단으로 활용하기로 했다"며 "중국 최고인민법원 관계자에 따르면 AI의 도움을 받으면 객관적 추론과 연역에 의한 판결이 가능하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미국에서는 이미 AI가 판결문 작성, 보석금 설정, 유무죄 결정 등에 관여하는 등 사법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다한 사건, 법관에 대한 높은 불신, 높은 상소율 등의 현실을 고려할 때 AI를 활용하면 재판의 공정성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면서 "AI가 인간을 대신해 사법판단을 지배해선 안되지만 4차산업혁명 시대에 AI를 공정한 재판의 보조수단으로 활용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자·피고인도 재판 당사자로 인정해야"

전문가들은 재판에 당사자인 국민들의 역할이 확대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반 국민들이 국민참여재판 등 재판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 사법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 변호사는 "서류중심 재판에서 법정 현장 중심 재판으로 변해야 한다"며 "국민참여재판 등 도입됐음에도 아직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제도들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참여 재판에 대해 오 부장판사는 "직접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하면서 배심원들의 결론이 오히려 직업 법관보다 나을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며 "배심제 확대는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고, 재판 결과에 대한 언론과 여론의 과도한 관심으로 인한 재판부 부담도 줄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도 "국민참여재판은 국민이 직접 참여해 사법 이해를 높이는 긍정적인 기능이 크다"며 "활성화를 위한 전문가들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재판 참여가 확대될 경우 자칫 '여론재판'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김 변호사는 "재판에 대한 비난은 물론 가능하지만 범죄자 엄벌 등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로 비난 여론이 선정적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며 "정치권력 뿐 아니라 여론으로부터도 재판 독립은 지켜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형사재판에서 피고인과 피해자 양쪽 모두를 재판 당사자로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 변호사는 "형사재판에서 피고인들이 소송 당사자로 지위를 확보하고 있느냐"며 "진술거부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형사변호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변호사 역시 "구속사건의 경우 피고인은 구금돼 있어 증거를 수집, 제출하는데 한계가 있고 변호인은 자신이 겪은 일이 아니어서 사건의 실체 파악에 어려움이 있다"며 "형사소송에서 무죄추정이 아니라 유죄추정의 원칙인 것처럼 피고인이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야 하는 구조로 왜곡돼있는 현실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가려져 진술권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않고 있다"며 "피해자가 소송 정보를 제대로 제공받고 재판절차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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