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제 '무재시거'는 없어야 한다

백인성 (변호사) 기자 2017.09.22 05:00
삼국지 무제기(武帝紀) 구현령엔 ‘유재시거(唯才是擧)’라는 말이 나온다. 불인, 불효하더라도 재주만 있으면 발탁하겠다는 인사지침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선 ‘재주마저’ 없어도 된다. 청탁만 있으면 만사형통이다. 청년들이 공정할 것으로 믿고, 지원하고 싶어하는 대기업과 공기업에서 채용 비리가 관행처럼 장기간에 걸쳐 만연했다.

강원랜드 사장은 자유한국당 의원의 비서관을 경력직으로 채용하라고 실무팀에 지시해 ‘맞춤 채용’을 했다. 심지어 이 회사가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선발한 신입사원 518명 가운데 무려 95%인 493명이 청탁 대상이었다. 네이버는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딸의 인턴을 청탁받아 특혜성 교육을 제공하고 현직 부장판사 자녀를 인턴으로 뽑아줬다.

석탄공사는 2014년 사장의 조카가 청년인턴 지원자 362명 중 321등으로 불합격할 위기에 처하자 자기소개서를 만점으로 고치고, 면접점수를 재작성하도록 시켜 최종 합격시켰다. 정규직 채용시험에서 과락에 해당하자 면접을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해줬다. 석유공사 사장은 전 직장 후배와 고교·대학후배의 이력서를 인사팀에 건네 공고나 면접 없이 열흘만에 이들을 채용하도록 했다. 이쯤 되면 매관매직이다.

최근 검찰 관계자는 “모두가 선망하는 대기업의 신입사원 공채는 공적 영역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 신뢰의 인프라가 무너진다면 정부가 가만 있지 않는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검찰이 칼을 빼든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수사는 그래서 더욱 엄정해야 한다. 채용비리가 수사의 ‘지류’ 아닌 ‘본류’가 되어야 한다. KAI 수사는 이러한 절망과 적폐의 고리를 끊는 도정이다.

권력형 채용비리는 반드시 엄단해야 하는 반사회적 범죄다. 힘 있는 자가 청탁을 통해 취업마저 독식한다면 정의로운 나라는 요원하다. 검찰은 KAI에서 부당한 청탁을 한 자가 누구인지 한 점의 의혹도 없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죄가 확인된다면 사회의 경종을 울릴 수 있도록 단죄해야 한다. 더 이상 ‘무재시거'(無才是擧)란 말이 나와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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