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이다. 귀소하라!" 소방관, 목숨걸고 받는 돈 고작…

[Law&Life-소방관, 목숨의 대가 ①] 위험수당 겨우 월 6만원…법정에서 작아지는 소방관들

김종훈 기자 2017.09.22 05:01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 지난해 10월5일 태풍 '차바'가 울산을 할퀴고 갔다. '역대 최강의 10월 태풍'으로 불린 차바는 시간당 최고 131.5mm의 '물폭탄'을 뿌렸다. 당시 강기봉 소방사는 선임 2명과 함께 주민들이 고립됐단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주민들은 이미 대피한 뒤였다. 돌아가려는 찰나, 급격하게 불어난 강물이 강 소방사 일행을 덮쳤다. 손에 잡히는대로 붙잡고 버텼지만 강 소방사는 끝내 급류에 휩쓸리고 말았다. 강 소방사는 이튿날 실종지점에서 3km 떨어진 곳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동료 소방관들이 "마지막 명령이다. 귀소하라"며 영결식에서 애타게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지난해 소방공무원들은 75만6987건의 구조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그렇게 13만4428만명을 구했다. 하루에 평균 2074회 출동, 368명을 구조한 셈이다. 이 가운데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건 11만5465회였다. 소방공무원들은 이중 오인·허위 신고를 제외하고 4만3413건의 화재를 진압했다.

같은 기간 고(故) 허승민 소방장, 박현우 소방교와 강 소방사 등 소방공무원 3명이 현장에서 순직했다. 소방공무원이 순직할 때마다 이들의 안전과 처우 문제가 불거졌고, 국회에선 소방관의 이름을 빌린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었다. 결국 지난 17일 새벽 강릉 석란정 화재 현장에서 또 이영욱 소방경과 이호현 소방교가 숨졌다. 소방공무원의 안전과 처우에 대한 대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다. 

◇위험수당 월 6만원…인력도 턱없이 부족

19일 소방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소방공무원의 정원은 4만4293명이었다. 이 가운데 현장인력 정원이 3만2460명이다. 소방기본법과 관련 행정안전부령이 정한 현장인력 정원이 5만1714명인데, 이에 훨씬 못 미친다.

소방기본법 제8조는 행정안전부령으로 소방업무에 어느 정도의 인력과 장비가 필요한지를 정하고, 관할 시·도지사는 이 기준에 맞게 소방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예산이 부족하단 이유로 이 조항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인력 부족 문제는 업무 과중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현장 소방관 1인당 담당 인구 수는 1579명에 달했다. 주당 평균 근무 시간은 3교대 기준 50시간을 넘겼다. 과중한 업무는 소방공무원의 안전을 위협한다. 지난해 격무에 시달리다 다쳐 공무상상해(공상) 판정을 받은 소방공무원은 448명으로, 2007년 이후 처음 400명을 넘어섰다.

처우는 10년 동안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게 위험근무수당과 화재진압수당이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화재·구조활동과 직접 관련된 수당들이다.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제13조에 따르면 현재 위험근무수당은 월 6만원이다. 2007년 4만원에서 10년 동안 불과 2만원 오른 셈이다.

같은 규정 제14조에 따른 화재진화수당은 10년 동안 최대 월 8만원에 묶여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한 번 출동할 때마다 주어지는 수당인 '출동 가산금'을 신설했지만 액수는 출동 1회에 3000원이고 하루에 3만원 넘게 받을 수 없다. 

◇입증 책임·비용 부담…법정에서 작아지는 소방관들

법정으로 가면 소방공무원들은 더욱 약자가 된다. 소방공무원들이 주로 겪는 송사는 공상이나 순직을 인정해달라는 행정소송과 화재·구조활동 도중 기물파손 등으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민사소송 등이다. 공상·순직 소송의 경우 대부분 사고나 질병이 발생해 공무원연금관리공단 등에 청구를 냈다가 기각당한 뒤 행정법원에 소장을 내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사고나 질병이 공무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소방공무원 측이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소방공무원을 위한 법률·의료자문을 전담하는 기관은 없다. 대부분 본인이나 가족이 치료비와 소송비용을 부담하면서 자력으로 소송을 끌고가야 한다.

실제로 고 김범석 소방관은 7년9개월 동안 화재진압·구조업무 현장을 누비다 혈관육종암으로 2014년 6월 세상을 떠났다. 유족들은 "거의 모든 화재현장에서 발생하는 염화비닐이 원인이었다"며 전문의 소견과 함께 순직을 인정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공단은 "의학적 근거가 없다"며 받아주지 않았다. 법원도 "막연히 장기간에 걸쳐 유독가스에 노출됐다는 사정만 갖고 인정해주긴 어렵다"며 같은 판단을 내렸다.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소방공무원들은 국회의 입법에 기대를 걸고 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의원 11명이 지난 5월 발의한 이른바 '김범석 소방관 법'(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이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이 법안은 김 소방관처럼 재난·재해현장에서 3년 이상 종사한 공무원이 암 등 질병을 얻었을 경우 '질병과 공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점을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입증하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법안이 통과되면 입증 책임을 소방공무원 측이 아닌 공단이 지게 돼 소방공무원 측이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피해자들이 소방공무원들에게 '묻지마'식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잦다. 예컨대 화재·구조현장에서 소방공무원이 피치 못하게 기물을 부쉈을 경우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라 배상 책임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게 된다. 그럼에도 개인적 감정 때문에 소방공무원 개인에게 소송을 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의원 18명이 소방기본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역시 상임위에 묶여 있다.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아니라면 소방활동 중 발생한 재산상 손해나 인명피해에 대해 소방공무원의 책임을 면제해준다는 게 개정안의 핵심이다.

대한변호사협회 역시 이같은 피해사례를 구제하기 위해 최근 '소방공무원 법률지원단'을 출범했다. 소방공무원들의 소송을 보조하는 거의 유일한 단체다. 변호사 392명이 지원 신청을 냈다. 지원단은 소방청과 협조해 법률지원이 필요한 사건을 발굴하고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지원단장을 맡고 있는 황선철 변호사는 "소방공무원들에 대한 처우가 지나치게 열악하다"며 "소방공무원 인력을 충원하고 수당도 인상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원단 간사를 맡고 있는 주어진 변호사는 "궁극적으로는 소방관 전담 병원을 신설하는 등 소방관에 대한 복지를 향상하는 방향으로 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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