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재권

[친절한 판례氏] "이 뮤지컬, 내가 쓴 극본이랑 같은데"…저작권 침해?

대법 "내용의 실질적 유사성 뿐 아니라 원작에 근거한 공연이라는 점 인정돼야"

황국상 기자 2017.10.11 05:05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내가 쓴 극본과 비슷한 내용의 작품이 다른 극단에서 공연이 된다면? 게다가 공연의 주제 뿐 아니라 등장인물, 소품까지 원래의 극본과 비슷하다면 저작권 침해를 의심해봄 직하다.

그러나 이같은 정황만으로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려면 문제된 공연이 원작과 실질적으로 유사하다는 요건 외에도 해당 공연이 원작에 근거해 이뤄졌다는 점까지 입증돼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판례다.(2014년 9월25일 선고, 2014다37491)

어린이 뮤지컬 창작자인 A씨는 극단 운영자인 B씨가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5000만원 상당의 손해를 배상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1987년 전래동화를 바탕으로 A씨가 만든 극본의 흐름과 흡사한 내용의 뮤지컬을 B씨가 2008년부터 4년여에 걸쳐 공연해왔다는 이유에서였다.

A씨는 두 개의 전래동화(소설)를 각색해 극본을 만들었다. 심술궂은 형이 마음씨 착한 동생을 부려먹다가 쫓아냈는데 우연히 동생이 도깨비 방망이를 얻어 부자가 됐다는 내용, 형이 동생을 따라 도깨비 방망이를 얻으러 갔다가 곤란에 빠지자 동생이 이를 구해줬다는 내용 등이 담긴 극본이었다. 이 극본에는 노래 5곡도 삽입돼 있었다. 다만 A씨는 이 극본에 대한 저작권 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B씨는 별개의 연출자인 C씨 등이 1991년에 같은 전래동화를 바탕으로 줄거리를 작성해 만든 극본을 넘겨받아 공연을 진행했을 뿐 A씨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1,2심은 B씨에게 50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A씨의 극본과 B씨 공연은 등장인물과 줄거리, 상황 설정, 소품 등이 전체적으로 동일하거나 유사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B씨가 A씨 저작권을 침해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B씨 공연에 A씨 극본에 삽입된 5개의 노래 중 4개가 포함돼 있다는 점도 저작권이 침해됐다는 근거로 지목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뒤집는 B씨 승소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공연권이 침해됐다고 하기 위해서는 침해됐다고 주장하는 기존의 저작물과 대비 대상이 되는 공연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이 있다는 점 외에도 그 공연이 기존의 저작물에 근거해 이뤄졌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B씨는 1심부터 일관되게 1991년 당시 C씨 등이 만든 극본으로 공연을 했다고 주장해 왔다"며 "B씨로서는 이번 소송이 제기되기 전까지 A씨가 작성한 극본이 존재하고 그를 바탕으로 공연이 실제 이뤄졌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고 주장해왔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B씨가 별도 저작물의 존재를 주장하면서 이에 부합하는 증거를 제출하고 있는 반면 A씨의 극본은 저작권 등록이 이뤄지지도 않았고 소송 제기 이전까지 장기간 공연이 이뤄지지도 않았다"며 "B씨가 A씨 극본 존재를 모른 채 공연을 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심은 B씨의 고의·과실에 대해 제대로 심리·판단하지 않은 채 저작권 침해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을 명한 잘못이 있다"며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원심법원은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에 따라 A씨 패소 결정을 내렸다. A씨가 이에 불복해 재차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했으나 이 사건은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을 받고 마무리됐다.

◇관련조항
민법 
제750조(불법행위의 내용)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저작권법 
제125조(손해배상의 청구)
① 저작재산권 그 밖에 이 법에 따라 보호되는 권리(저작인격권 및 실연자의 인격권을 제외한다)를 가진 자(이하 "저작재산권자등"이라 한다)가 고의 또는 과실로 권리를 침해한 자에 대하여 그 침해행위에 의하여 자기가 받은 손해의 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 그 권리를 침해한 자가 그 침해행위에 의하여 이익을 받은 때에는 그 이익의 액을 저작재산권자등이 받은 손해의 액으로 추정한다.
② 저작재산권자등이 고의 또는 과실로 그 권리를 침해한 자에 대하여 그 침해행위에 의하여 자기가 받은 손해의 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 그 권리의 행사로 통상 받을 수 있는 금액에 상당하는 액을 저작재산권자등이 받은 손해의 액으로 하여 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③ 제2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저작재산권자등이 받은 손해의 액이 제2항의 규정에 따른 금액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그 초과액에 대하여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④ 등록되어 있는 저작권, 배타적발행권(제88조 및 제96조에 따라 준용되는 경우를 포함한다), 출판권, 저작인접권 또는 데이터베이스제작자의 권리를 침해한 자는 그 침해행위에 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저작권법
제126조(손해액의 인정) 
법원은 손해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되나 제125조의 규정에 따른 손해액을 산정하기 어려운 때에는 변론의 취지 및 증거조사의 결과를 참작하여 상당한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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