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상여금'은 통상임금 아니라고? 사실은…

[황국상의 침소봉대] 짝수달·명절 상여금도 '일할계산'하면 통상임금 인정 가능

황국상 기자 2017.10.19 05:00
지난 8월31일 법원이 기아자동차 '통상임금'사건을 판결한 날 서울 서초구 기아차 사옥 인근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있다. 당시 재판부는 근로자들이 청구한 원금 6588억원에 이자 4338억원이 붙은 합계 1조926억원 중 원금 3126억원과 이자 1097억원을 인정한 4223억원의 미지급분을 지급하라고 했다. 이번 소송은 근로자들이 2008년 10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받지 못한 통상임금을 회사에 청구하면서 부터 시작됐다. /사진제공=뉴스1

대법원 "짝수달·명절 상여금은 통상임금 아냐"
지난 15일 한 방송사의 뉴스 제목입니다. 대법원의 판결을 놓고 이 방송사 외에도 적잖은 언론사들이 비슷한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일부 언론사는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이 오락가락한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대법원은 뉴스가 잘못됐다고 합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기존 판례와 전혀 달라진 게 없는데 사실이 잘못 알려졌다"며 "법리를 잘못 해석한 뉴스"라고 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법원의 판결은 짝수달·명절 상여금은 모두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루씩 '일할계산'하지 않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짝수달 또는 명절에 주어지는 상여금도 '일할계산'해서 지급하면 통상임금으로 볼 수 있다는 얘깁니다.

◇ '고정성' 인정돼야 통상임금

사정은 이렇습니다. A사에서 30년간 근무한 B씨는 그간 덜 받은 휴일·야간수당이나 연차수당을 지급해 달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이 수당을 정하는 기준액인 통상임금이 잘못됐으니 통상임금을 바로잡고 수당도 다시 계산해 달라는 게 B씨의 요구였습니다. 통상임금은 근로자의 근로에 대해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금액으로, 각종 수당이나 퇴직금 등을 산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B씨는 "기존 통상임금에는 1년 중 짝수달과 설날·추석을 포함해 총 8회에 걸쳐 지급된 상여금(기본급과 수당을 더한 금액의 800%)이 빠져 있다"며 "이를 포함해 통상임금을 정할 경우 그간 덜 받은 수당은 총 5950만원에 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2심에서는 B씨가 승소했고 A사는 청구액의 90%에 달하는 5355만원을 내줘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어떤 수당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으려면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 등 3가지 요건을 모두 만족해야 합니다. 지급주기가 월급과 같은 한달이 아닌 2개월 또는 3개월이라도 그 수당이 정기적, 일률적, 고정적이면 통상임금으로 인정됩니다.

만약 이 가운데 한가지 요건이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정기성'은 일정 간격으로 계속 지급되는 것을, '일률성'은 기술·경력 등과 관련해 정해진 조건·기준을 충족한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고정성'은 어떤 수당이 특정 업적이나 성과 등과 무관하게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하면 '당연히 받는 것'으로 확정된 것을 뜻합니다. 이번 사건에선 짝수달·명절 상여금이 '고정성'이 있는지가 문제가 됐습니다.

◇ '일할계산' 안 하면 통상임금 아냐

대법원은 이미 '고정성'의 기준을 세운 바 있습니다. 2013년 12월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2012다89399)는 "일정 근무일수를 채워야만 지급되는 임금은 '근로의 제공' 외에도 '근무일수 충족'이라는 추가 조건이 필요하다"며 "이 조건을 충족할 것인지 여부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해당 급여는 '고정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근무일수에 따라 수당의 액수를 '일할계산'해 지급하는 경우 일할계산된 만큼의 금액은 지급이 확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며 "'일할계산'이 되는 수당은 '고정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일할계산'이란 어떤 수당을 수령할 자격이 생기는 단위 근무기간(1개월 또는 1주일 등)을 전부 채우지 못했다더라도 근무일수에 비례해 수당을 계산해 지급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컨대 짝수달 말에 상여금을 지급하는 C사에서 일하는 D씨가 4월말 300만원의 상여금을 받은 경우를 가정해 보겠습니다. D씨가 다음 상여금 지급일(6월말)에 앞서 5월말에 퇴사할 경우 상여금의 절반인 15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면 C사의 이 상여금은 '일할계산'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고정성'이 인정돼 통상임금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A사는 상여금 지급일에 재직하지 않은 근로자에게는 한푼도 주지 않았습니다. 상여금 지급일보다 하루라도 일찍 퇴직한 근로자는 상여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 겁니다. '일할계산'을 하지 않은 거죠. 이에 대법원은 A사의 상여금이 '고정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보고 B씨에 대해 승소 취지의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어떤 수당의 '고정성' 충족 여부는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지난 8월 기아자동차와 노조 사이의 통상임금 소송에서는 '상여금'의 고정성이 법원에서 인정돼 노조가 승소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같은 그룹의 현대자동차에서는 상여금의 고정성 요건이 인정되지 않아 사측이 승소한 바 있습니다.
법무법인 화우의 오태환 변호사는 "A사의 사례에서 1·2심이 B씨의 손을 들어준 것처럼 '고정성' 요건을 보다 넓게 인정하려는 시도가 일부 하급심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이번 대법원 판결은 '고정성'에 대한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을 보다 구체화하고 재확인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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