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부터 유리천장 깨야"…'女검사 맏언니' 조희진 검사장

[검사사용설명서-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 '여성 1호' 부장검사·검사장…공무원 남편 외조가 든든한 뒷배

백인성 (변호사) 기자 2017.11.21 05:00

1989년 겨울, 서울 광진구에 있던 서울지검 동부지청(현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청사 정문으로 젊은 여성이 들어섰다. 동부지청이 받는 첫 여성 검사 시보(연수원생)였다. 호송차가 그를 지나쳐 청사에 멈췄다. 굴비두름 엮듯 포승에 묶인 피의자들이 차에서 내렸다. 공부만 하던 연수원과는 달리 '연습이 아니라 실전'이라는 긴장감이 절로 들었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여성 연수원생은 아직 검찰에 있다. '여성 1호' 검사장이자 여검사들의 '맏언니'로 불리는 조희진 검사장(서울동부지방검찰청장)이다. 

◇'금녀의 영역' 깬 '여성 1호' 검사장

"검찰 지원 당시 면접을 봤다. 당시 법무부의 차관과 검찰국장,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이 면접위원이었다. 그 중 한명이 '여성 검사인데 여성, 청소년 등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말은 왜 하지 않느냐'고 묻더라. 당황했지만 '물론 그것도 열심히 할 것'이라고 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당시 간부들은 '여성 검사는 그런 걸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아닌가 싶었다." 조 검사장의 회고다. 

당시 검찰은 '금녀'의 영역이었다. 조 검사장은 고려대 법대를 나와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제19기)을 수료하고 1990년 서울지방검찰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사법연수원 동기 가운데 유일한 여성 검사였다. 연수원에 여성 동기 9명이 있었지만 모두 법원이나 법무법인으로 갔다.

조 검사장이 임관할 당시 여검사는 전무했다. 앞서 검찰을 선택했던 여성 법조인들은 모두 전업한 뒤였다. 1982년 연수원 12기인 조배숙 인천지검 검사(현직 국민의당 국회의원·전북 익산을)와 임숙경 변호사가 검사로 임관했지만 둘은 각각 1986, 1987년 판사로 전직했다. 

'대한민국 여성 1호' 법무부 과장, 부장검사, 사법연수원 교수, 검사장이란 칭호는 모두 그의 차지였다. 신설 보직인 법무부 여성정책담당관, 법무부 부부장검사,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장, 형사7부장을 거쳐 천안지청장, 서울고검 차장을 역임했다. 2014년엔 여성 첫 검사장이 됐다. 제주지검장, 의정부지검장을 거쳐 서울동부지검장으로 재직 중이다. 지난 7월에는 검찰총장 후보자추천위원회가 추천하는 최종후보 4인에 오르기도 했다.

조희진 서울동부지방검찰청장/사진=동부지검 제공

◇ "내 안에 있는 유리천장을 깨라"

조 검사장은 후배 여검사들에게 '여성 검사'가 아닌 '검사'로 승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페이스북의 COO(최고운영책임자)인 쉐릴 샌드버그의 책을 보면 '여성들이 회의에서 가운데 당당히 앉아있지 않고, 구석 뒷자리에 앉아 먼저 손을 들지 않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성이라고 악착같이 올라가려는 욕심을 죄악시하는 식으로 스스로를 검열할 이유가 없다. 정작 나도 검찰총장 후보 추천 당시 '내가 해도 되는가' '기수상 질서를 깨는 게 안 좋게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망설이는 마음이 드는 걸 느끼고 스스로 부끄러웠다. '마음 속 유리천장부터 깨라'고 줄곧 말해왔는데…. 가능성보다는 여성 총장 후보가 나온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고 후보 추천을 받아들였다."

그는 여검사들에게도 공정하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형사부와 공판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여검사가 왜 여기에만 많아야 하는가. 소위 특수부, 공안부에 여검사를 '1명만' 배치하는 관행을 없애야 한다. 여검사들에게도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조 검사장을 롤모델로 삼은 후배들이 늘어나면서 검찰 내 여성 검사 비율은 30% 가까이로 높아졌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현재 2084명의 검사 가운데 여성이 614명으로 29%를 차지한다. 그가 맡은 동부지검의 경우 검사 33명 가운데 절반인 16명이 여성이다. 조 검사장은 의정부지검장 재직 시절 특수부에 여성 검사를 남성 검사보다 더 많이 배치하기도 했다. 전국에서 처음이었다. 기계적으로 배치되는 여성 검사의 보직을 개선하려는 '실험'이었다.

◇"저녁에 들어가니 남편이···"

조 검사장은 운이 좋게도 검사가 적성에 맞았다고 했다. "실제 검사 시보를 하면서 증거를 수집하고, 피의자와 질의응답을 하면서 진실을 찾아내는 작업이 너무나 좋았다. 법관은 끝난 사건을 갖고 판결문을 써야 했다. 변호사 시보 때는 그렇게 자신이 도움이 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살아있는 사건을 다루고 싶었고, 그걸 가능하게 해준 곳이 검찰이었다."

하지만 일과 가정의 양립은 조 검사장에게도 항상 숙제였다. 그를 든든하게 받쳐준 건 공무원인 남편이었다. "대학 선배인 남편에게서 외조를 많이 받았다. 공무원의 생리를 남편 보면서 알았다. 둘다 공직자니까 해야 하는 것, 하지 말아야 하는 것 등에 대한 조언을 많이 받았다." 그의 남편은 문재인정부 출범 후 도종환 문화체육부 장관 취임 전까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직무대행을 맡았던 송수근 전 문체부 1차관이다. 고려대 영문학과 78학번으로 조 지검장의 3년 선배다. 검사로 임관한 뒤 부장검사의 소개로 만났다.

조 검사장은 "남편이 요즘 매일 아침을 해 준다"고 자랑했다. 어제는 순두부찌개와 계란이었다면 오늘은 낫토와 아로니아라는 식으로 매일 식단이 바뀐다고 했다. "남편이 뉴욕 문화원장 근무하던 시절 아들에게 밥해주던 게 버릇이 됐다. 저녁 때 술에 취해 들어오니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고기를 물에 담궈 핏물을 빼고 있더라. 갈비탕 해준다고. 그만두라고 해도 내가 너무 칭찬을 해 놔서 그만두기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남편이 부엌 일을 일로 생각하지 않아서 좋다. 여성 후배들한테 '남자가 부엌살림하기 시작하면 여성의 모든 걸 빼앗아갈지도 모른다'고 농담성 경고도 한다." 조 검사장은 행복해 보였다.

그의 취미는 성당에서 피아노 반주하기와 평생교육대학에서 배운 서양화 그리기였다. 요즘엔 운동이 취미다. 직업상 지방을 자주 옮겨다니다 보니 한 취미를 진득하게 이어갈 시간이 마땅치 않았다고 했다. 운동에 재미를 붙인 조 검사장은 "푸시업 15개씩 몇세트를 한 번에 한다"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물론 남편도 함께다. 그는 1962년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태어났다. 송 전 차관과의 사이에 아들 한 명을 뒀다.

[프로필]
△1962년 충남 예산 출생 △서울 성신여고, 고려대 법학과 졸업 △제29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19기 △수원지검 검사 △서울지검 북부지청 검사 △법무부 여성정책담당관 △서울지검 동부지청 검사 △서울고검 검사 △법무부 검찰국 검사 △의정부지검 형사4부장검사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장검사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장검사 △서울고검 검사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차장검사 △대전지검 천안지청장 △서울고검 검사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서울고검 차장검사 △제주지검 검사장 △의정부지검 검사장 △서울동부지검 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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