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부(富)의 대물림은 무조건 나쁜가?

화우의 조세전문 변호사들이 말해주는 '흥미진진 세금이야기'

오태환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2017.11.30 05:20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최근 모 장관 후보자의 증여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정치권에서의 사치스러운 말 잔치는 차치하고 순수하게 법적 관점에서만 보면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

자녀에게 증여를 하지 않고, 건너뛰어 손자녀에게 증여하는 이른바 '세대생략증여'라는 방식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이는 법적으로 허용되는 방식이고, 증여세의 부담을 금전대여를 통해 해결하였으며, 빌린 돈에 대한 이자는 증여 받은 재산에서 얻은 수익으로 충당하였다면 현행 실정법상으로 흠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 반감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 년 전 모 단체에서 조사한 결과를 본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최 상위권 자산가들의 재산의 원천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를 조사한 것인데 사뭇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미국의 경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창업자 빌 게이츠(Bill Gates)나 페이스북(Facebook)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 구글(Google) 창업자 래리 페이지(Larry Page), 투자의 귀재라는 워렌 버핏(Warren Buffett) 등 대다수가 당대의 능력과 도전으로 자수성가한 것인 반면, 우리나라는 대다수가 선대로부터 물려 받은 재산으로 부를 유지하고 있는 재벌가의 2, 3세라는 것이 그 결과였다. 

그런데 이런 결과를 한번 뒤집어 보면 우리나라도 현재 자산가들 선대의 단계에서는 당대의 사업성공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는 것이 된다. 아마도 20 ~ 30년 전쯤으로 조사를 앞당긴다면 우리나라도 대부분의 자산가들이 당대의 사업성공으로 부를 이룩한 분들이 상위권에 포진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왜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는 자신의 노력과 땀으로만 성공한 사업가가 잘 나오지 않는 것일까?

경제전문가도 아닌 필자가 다루기에는 무거운 주제이지만 개인적인 소견은 이렇다. 입시만을 위한 교육으로 실종된 창의성과 도전정신, 규제위주의 행정과 과도한 상속∙증여세로 인한 의욕상실, 고령화 사회로 인한 내수실종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어려운 경제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새로운 사업영역에 도전해 볼 엄두초자 내기 어려워 월급쟁이에 안주해 버리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 아닐까. 

어찌 보면 부의 대물림에 대한 반감의 근본적인 원인은 별다른 노력 없이 부모 잘 만나 편안하게 산다는 것을 질투하는 것이라고 치부하기 보다는, 아무리 노력하고 도전해보려고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고 성공한다 한들 만족할 정도에 이를 수 없을 것이라는 좌절감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이제 산업화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도약을 위한 국가개조의 시작점에 서 있다. 국가의 지도자들이 다음 세대를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모든 국민들이 힘을 합쳐 보기를 기대하는 것은 나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정서상 부모세대가 잠을 줄여가며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이유 중 하나가 ‘나는 힘들게 살더라도 자녀들만은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하고 싶다’는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부를 대물림하는 그 행위 자체를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 

여기에 조세 변호사로서 한가지 첨언하자면, 전세계적인 상속∙증여세 제도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현행 상속∙증여세가 과도하다는 견해가 있는데, 그렇다면 상속∙증여세를 실용주의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에서 다시 한번 들여다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국이 상당한 액수의 공제 등을 통해 상속세의 부담을 줄이고, 아예 상속세를 폐지하자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법무법인(유) 화우의 오태환 변호사의 주요 업무는 조세 관련 쟁송과 세무조사, 행정불복 분야이다. 부산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을 거쳐 조세 및 행정 전문 법원인 서울행정법원판사로 재직했다. 현재 대법원 특별법연구회, 대한변호사협회 세제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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