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트럼프가 왔다고?"…눈먼 검찰의 칼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검찰이 지방선거 직전 야당 수사한다면?…검찰의 '정치' 딜레마

이상배 기자 2017.12.07 05:00

이명박정부 때 일이다. 2012년 3월 검찰이 한명숙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의 측근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한 전 대표가 국무총리였던 시절 비서관으로 있으면서 공천헌금 1000만원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사실상 한 전 대표를 겨냥한 수사였다. 

앞서 한 전 대표는 뇌물수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두차례나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2건 모두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터였다. 자존심을 구긴 검찰이 한 전 대표를 상대로 '설욕전'에 나섰다는 얘기가 나온 이유다. 

문제는 이때가 19대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는 점이다. 이즈음 검찰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 씨의 미국 아파트 구입 사건에 대해서도 수사에 들어갔다. 민주당은 검찰의 '정치개입' '야당 죽이기'라며 강력 반발했다. 

이명박정부 말기에 치러진 19대 총선은 정권 심판 성격이 강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에게 쉽지 않은 구도였다. 당초 제1야당인 민주당의 우세가 점쳐졌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검풍(檢風) 탓인지, '김용민 막말 파문' 때문인지 민주당은 127석을 건지는 데 그쳤다. 

새누리당은 152석을 얻으며 과반의석 확보에 성공했다. '선거의 여왕'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를 계기로 대선주자의 지위를 확고하게 다졌다. 당시 검찰은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이는 거의 없다.

과거 검찰은 정치권을 수사할 때 선거 등 정치일정을 고려했다.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범정기획관)이 서울중앙지검 등 일선 검찰청과 주요 정치일정을 공유했다. 그러면 각 검찰청은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은 정치일정을 피해서 수사했다. 정치적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반대로 검찰이 선거 직전에 정치인을 수사했다면 이것 역시 정치적 판단과 무관치 않았다. 사실상 정치개입인 셈이다. 2012년 19대 총선이 그런 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검찰개혁'을 부르짖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 

지금은 어떨까? 검찰은 더 이상 정치일정은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한 검찰 간부는 "요즘은 대검 범정기획관이 일선 검찰청에 주요 정치일정을 알려주지 않는다"며 "정치일정에 대한 고려없이 오로지 수사상 필요에 따라 판단하라는 뜻"이라고 했다. 실제로 문무일 검찰총장은 취임 직후 범정기획관실의 정치권 동향 파악 기능을 폐지했다. '정치검찰'의 낙인을 지우기 위한 '셀프개혁안' 가운데 하나다.

단적인 예가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7일 전병헌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의 측근이었던 윤모씨를 체포하고 그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전 전 수석이 회장으로 있었던 한국e스포츠협회에서 1억여원을 빼돌린 혐의였다. 이 돈은 전 전 수석이 롯데홈쇼핑을 압박해 e스포츠협회에 후원금으로 내게 한 3억여원 가운데 일부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공교롭게도 검찰이 윤씨를 체포하고 압수수색한 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빈 자격으로 방한한 날이었다. 그러나 측근에 대해 강제수사가 시작됐다는 소식에 전 전 수석은 공식 환영 행사에 불참했다. 9일 뒤 전 전 수석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검찰 간부는 "우리는 그날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줄도 몰랐다"며 "뒤늦게 '왜 하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는 날 청와대 참모와 관련한 압수수색을 하느냐'는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고 했다.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검찰이 정치일정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선거를 목전에 두고도 필요한 수사가 있다면 가차없이 하겠다는 얘기다. 문제는 국민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직전에 검찰이 야권 정치인을 수사한다면 이를 정치적 의도없는 순수한 사정수사로 받아들일까? 

검찰의 고민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검찰로선 정치적 고려를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다. 하지만 정치적 고려가 없다는 핑계로 더 노골적인 정치개입을 한다면 더 큰 문제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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