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이 불법인 거 아세요?"…'문신사' 운명 쥔 헌재

[Law&Life-예술과 범법 사이 ①] 현행법상 의사 아닌 문신사는 범법자…"입법으로 해결해야"

한정수 기자, 김종훈 기자 2017.12.08 05:01

"TV를 보면 문신을 한 연예인들이 많잖아요. 요즘은 문신이 미용실에서 파마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의 문신 기술을 높게 인정해줘요. 그런데 문신을 해주는 문신사가 불법인 거 아세요? 문신사들을 전부 잠재적 범법자로 모는 게 현행법이예요."

10년 가까이 서울 근교에서 문신 시술을 해 온 문신사(타투이스트) 김모씨(32)의 말이다. 현행법은 문신을 의료행위로 분류한다. 문신 시술을 받은 사람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의사가 아닌 사람이 문신 시술을 하면 '무면허 의료행위'가 돼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 보건범죄단속법에 따라 2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다. 여기에 100만원 이상, 1000만원 이하의 벌금도 부과된다. 대법원은 1992년부터 이 같은 판례를 유지해 오고 있다.

문신사들은 수차례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헌재는 번번이 등을 돌렸다. 2007년 헌재는 "의사가 아닌 사람이 문신 시술을 하는 행위를 형사 처벌하는 보건범죄단속법 관련 조항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문신 시술이 의료행위인지 여부는 법률 해석·적용상의 문제로 이에 대한 판단은 법원의 고유한 권한"이라고 했다. 한국패션타투협회(회장 임보란) 소속 문신사 400여명은 지난 7일 또 다시 헌법소원을 내고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문신사 2만명, 연 300만회 문신 시술


법적으로 문신 시술을 의료행위로 제한하는 건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문신 시술을 할 때 실수로 색소가 피부 깊숙이 주입되거나 문신용 침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각종 질병이 전염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사가 문신 시술을 하는 업체는 전국적으로 10곳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업계에서는 의사가 아닌 문신사 2만여명이 연간 300만회 이상 시술을 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온라인 설문조사 업체 두잇서베이가 지난 7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신 합법화에 '찬성'하는 사람의 비중은 65%로 '반대' 16%를 압도했다. 신체 일부에 새기는 문신이나 눈썹 문신 등 반영구 화장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밝힌 사람은 70%를 넘었고, 앞으로 문신을 해 볼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도 35%에 달했다. 문신이 이미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는 방증이다.

이에 해묵은 법원 판례와 헌재 결정이 시대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문신 관련 법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신사 김씨는 "시대가 변했는데 20년도 넘은 판례가 계속 유지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며 "정기적인 단속 같은 것을 받아 본 경험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문신이나 타투를 검색하면 시술을 받을 수 있는 업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일부 문신사들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버젓이 자신이 운영하는 업체와 문신 도안, 작품들을 광고하기도 한다.

가수 산다라박의 문신

◇美 41개주 '문신 자격증·면허증' 운영

해외에선 일정 요건만 갖추면 문신 시술을 할 수 있도록 자격을 부여하거나 허가를 해주는 경우가 많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등에 따르면 2011년 기준 미국의 총 41개주가 문신 관련 자격증 또는 면허 제도를 운영하면서 업체들을 엄격히 관리한다. 구체적으로 캘리포니아주에서 문신 시술을 하려면 보건기관에 등록을 해야 한다. 등록을 위해선 자신이 B형 간염 예방접종을 했는지, 혈액매개감염 교육을 이수했는지 여부에 대한 증빙 자료가 필요하다.

영국은 최소 1년 이상의 도제식 교육을 통해 문신 기술과 위생, 안전에 대한 내용을 배운 뒤 문신 시술을 할 수 있다. 문신 업체를 개설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 규정에 따라 허가를 받아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신 시술을 하기 전 지역 보건청에 신고를 해야 하고, 신고시 최소 21시간의 위생·보건 교육 이수증을 첨부해야 한다. 이 밖에 중국과 필리핀 등 아시아권 일부 국가에서도 의사가 아닌 사람들이 문신 시술을 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자격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입법 논의가 있었다. 지난 18·19대 국회에서 김춘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신사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의료계의 반대 등으로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채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선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법안 발의를 목표로 각종 자료들을 검토 중이다.

한국패션타투협회의 헌법소원을 대리하는 손익곤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한국도 문신 관련 자격증 제도나 관청의 관리를 받는 업장 허가제 등이 도입돼야 한다"며 "헌재가 이번에는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결론을 내려주길 바란다. 헌재의 결정이 나오기 전에 관련 입법이 이뤄지는 편이 가장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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