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은근슬쩍 사라진 '원칙'…사법신뢰 어디로

김종훈 기자 2017.12.11 05:01
"입법예고 했잖아요. 17대 국회 사개추위(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때부터 현안이었는데…."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이 지난 1일 폐지됐다는 보도자료를 보고 뒤늦게 법무부에 전화를 걸었다.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보호하는 중요한 법 조항이 어쩌다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졌는지 궁금했다. 법무부는 이미 알릴 만큼 알리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국회도 같은 반응이었다. 법제사법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이 원칙을 폐지할지를 두고 정치권과 법조계가 어떤 논의를 주고받았는지 설명하면서 충분히 공론화된 내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설명에 '국민'은 빠져있었다.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은 벌금·과료 등 약식명령을 받고 정식재판을 청구한 피고인에게 약식명령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다는 규정이다. '더 엄한 벌을 받을지 모른다'는 심리적 위축에서 벗어나 누구든 자유롭게 정식재판을 청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1997년 도입됐다.

법원과 검찰은 이 원칙을 삭제하고 징역형 선고까지 가능하게 하자고 주장해왔다. 약식명령 후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사건이 4배 넘게 늘어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국회는 벌금액만 올릴 수 있게 하는 선에서 마무리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했고, 법원과 검찰은 마지못해 이를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 국민들의 목소리는 얼마나 반영됐을까. 이번 국회에서 이 원칙이 폐지되기까지 제대로 된 토론회나 공청회 한번 열리지 않았다. 법원을 출입하는 기자도 모르고 있었는데 일반 국민이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불이익변경금지 원칙 폐지를 추진한 정부와 국회를 이해 못할 바 아니다. 판·검사는 부족하고 사건은 폭증한다. 그렇다고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은 게 정당화될 순 없다. 제대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은근슬쩍 바뀌는 사법제도를 국민들이 얼마나 신뢰할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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