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국정원 댓글수사' 축소했나…檢 현직 경찰서장 기소

(상보)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김병찬 당시 서울청 수사2계장 정치개입 관련 증거 검색 키워드 100개→4개 축소 주장

백인성 (변호사) 기자, 한정수 기자 2017.12.11 17:09
김병찬 용산경찰서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 서장은 지난 2012년 경찰의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상황을 국정원에 유출하는 등 수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7.11.28/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댓글 의혹 수사 당시 경찰청 간부가 국정원에 수사 기밀을 누설해 국가정보원의 증거인멸을사실상 도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간부는 당시 포렌식팀 분석관들을 대상으로 '국정원 여직원' 파일의 수사 규모를 의도적으로 축소하도록 주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관련 경찰의 수사기밀 누설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팀장 2차장검사 박찬호)은 2012년 12월 국정원에 수사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김용찬 서울 용산경찰서장(당시 서울지방경찰청 수사2계장)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11일 밝혔다.

김 서장은 2012년 12월 15일부터 16일 사이 △국정원 여직원 제출 노트북 분석 과정에서 ID 발견 및 정치관여 글 활동이 파악된 사실 △제한된 키워드 검색 방식으로 분석하겠다는 분석 정황 등을 국정원 정보관에게 알려주고, 무혐의 결론의 중간수사결과 내용이 기재된 보도자료를 사전에 국정원에 보내주는 등 수사 기밀을 누설한 혐의(공무상비밀누설)를 받고 있다.

당시 국정원은 제18대 대선을 8일 앞둔 2012년 12월 11일 속칭 '국정원 여직원' 사건이 발생하자 여직원이 사용하던 노트북을 경찰에 제출했다. 국정원은 조직적인 정치개입 사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및 수서경찰서 출입 정보관들을 총동원했다. 국정원은 '정상적 대북심리전 활동과정에서 일부 직원의 개인적 일탈'에 불과하다는 기조를 세운 후 '대선 관련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일체의 정치적 활동을 한 사실이 없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서울지방경찰청 포렌식팀은 그해 12월 14일 수서경찰서의 의뢰로 국정원 여직원이 제출한 노트북에 대한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포렌식팀은 아이디와 닉네임 등이 기재된 텍스트 문서 파일을 복원해 정치관여·선거개입 사이버 활동 사실을 확인해 내부에 보고했다. 정치관여성 댓글에 사용된 ID 등이 기재된 이 파일은 인터넷 검색·추적으로 진상을 규명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였다. 수서경찰서는 실제로 파일 입수 후 이틀만에 정치관여성 게시글을 다수 찾아내 수사를 본격화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김 서장은 12월 15일 서울청 담당 국정원 정보관으로부터 수사 진행상황에 대한 문의를 받고 "상황이 심각하다, 정치관여성 댓글이 확인된다, 키워드를 3~4개 정도로 줄여서 검색하기로 했다"고 알려준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국정원은 심리전단 소속 직원들에게 트위터 탈퇴 등을 지시해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했다.

특히 김 서장은 수서경찰서가 100개의 분석 키워드를 의뢰했지만 이 분석 키워드를 무시하고 4개(박근혜·문재인·민주통합당·새누리당)로만 검색어를 줄여 검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실제로 이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제한된 분석결과를 토대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도록 분석관들을 주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검찰 조사 내용대로라면 앞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재판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 된다. 김 전 청장의 주된 무죄 근거는 '검색 키워드의 범위를 분석관들이 자체적으로 결정한 사실'이었지만 이 근거가 통째로 뒤집힌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김 서장은 또 16일 국정원 정보관의 부탁을 받고 중간수사결과 내용이 기재된 보도자료를 수사 주체인 수서경찰서에도 알려주기 전 수사대상인 국정원에 미리 송부했다. 국정원은 이러한 보도자료를 입수하고 국정원 심리전단 활동의 문제를 제기한 특정 정당을 높은 수위로 공박하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미리 준비해 16일 밤 11시 수서경찰서가 보도자료를 발표하자 불과 11분 뒤 자체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여론 왜곡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김 전 서장은 2012년 말부터 2013년 6월까지 국정원 정보관과 총 58회 연락을 취했으며 그 중 '국정원 여직원 사건 발생일인 12월 11일부터 12월 16일까지의 사이에 80%가 집중됐다"면서 "수사 내용이나 수사 결과를 사전에 수사대상자와 상의하고 결과를 사전에 알려준 것은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김 서장은 지난 2013년부터 올해 6월까지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과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에 대한 형사사건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수사기밀 누설 및 키워드 축소를 주도한 사실 등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수사기밀 누설사실이 없고 노트북 분석범위 제한과 관련해 권 전 과장과 언쟁이 없었다"고 허위 증언한 혐의(위증)도 함께 받는다.

김 서장은 서울청 관계자 및 분석관 등에게 전화해 '자신이 키워드 4개를 제안한 사실이 없고, 텍스트 문서 파일발견 사실이 보고된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주입시키며 자신의 주장에 부합하는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을 하고 그 통화내역을 녹음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서장은 그러나 내부망에 글을 올려 자신의 관련 혐의를 전부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수사팀은 지난 2012년 12월부터 2014년 4월까지 국정원 심리전단 사이버 정치관여 대선개입 사건, 이른바 '국정원 댓글사건' 관련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사법방해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과 대변인 하모씨 등 2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남 전 원장은 2012년 국정원장 부임 직후 심리전단 감찰을 통해 정치개입 등 위법활동을 직접 확인하고도 국정원 댓글 사건의 수사·공판에 대응할 목적으로 '현안 TF'를 구성하고 검찰 압수수색에 대비해 위장 사무실을 만들어 허위 자료를 비치하고, 국정원 직원에게 '불법 사이버활동이 국정원의 조직적 정치관여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취지로 허위 증언을 하도록 지시한 혐의(위계에의한공무집행방해·국가정보원법위반·위증교사 등)를 받고 있다.

하모 대변인은 원 전 원장의 지시에 따라 지난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정원의 정치개입활동을 두고 정상적 대북심리전의 일환이고 국정원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왔다는 허위 내용의 보도자료를 작성·배포한 혐의(허위공문서작성·동행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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