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를 향한 '따뜻한 심장'…이진성 헌재소장

[헌재 사용설명서-이진성 헌법재판소장]

송민경 (변호사) 기자 2017.12.19 05:00


1983년 부산지방법원에 이진성 판사가 부임했다. 급한 마음에 가족을 두고 부산으로 먼저 내려갔다. 며칠 뒤 가족이 이삿짐 트럭에 짐을 싣고 부산에 도착했다. 밤 9시가 다 된 늦은 시간이었다. 법원에서 퇴근한 이 판사가 반가운 얼굴로 아내와 아기를 맞았다.

트럭의 짐을 내려 정리하던 아내는 뒤늦게 이 판사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고 보니 이 판사는 트럭에서 책상과 의자만 꺼내 곧장 작은 방으로 들어간 뒤였다. 아내가 홀로 아기를 돌보며 짐을 정리하는 동안 이 판사는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밤새도록 이튿날 재판에 쓸 판결문을 고쳤다.

지난달 취임한 이진성 헌법재판소장(61·사법연수원 10기)의 이야기다. 가족에겐 서운할 일이지만, 이 소장의 사명감이 얼마나 투철한지 보여주는 일화다.

◇따뜻한 심장의 엘리트

그가 보여온 지독한 직업의식과 경기고·서울법대라는 이력만 보면 자칫 차가워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장은 사법부와 헌재에서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리더십'으로 정평이 나있다.

헌재소장 청문회를 준비할 때 이 소장은 자신을 돕는 직원들을 먼저 걱정했다. 이미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와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가 잇따라 낙마한 뒤였다. 이 소장까지 낙마하면 청문회를 돕는 헌재 연구관들의 상심이 여간 크지 않을 터였다. 이 소장은 청문회를 준비하는 연구관들을 모아놓고 "청문회를 통과하면 여러분들 덕이고, 통과하지 못하면 내가 부족한 탓이니 자신있고 당당하게 준비하라"며 격려했다.

소장 취임 전까지 그는 매월 한차례씩 비서실 직원과 연구관들을 불러 '화요미식회'란 이름의 맛집 탐방 행사를 가졌다. 평소 가고 싶었던 맛집을 추천받아 운영하는데, 만약 맛이 없으면 추천한 사람이 밥값을 낸다는 규칙을 내걸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번도 빼놓지 않고 모두 이 소장이 냈다.

이 소장은 직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절대 업무 얘기 등 자리를 무겁게 할 수 있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헌재 직원들 사이에선 함께 식사하기 가장 편한 재판관으로 꼽힌다.

재판 업무에 있어서도 이 소장은 연구관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본인의 의견을 고집하기 보다 다른 의견도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면 주저없이 수용하는 합리적인 상사란 평이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사진=이동훈 기자

◇약자의 편에 선 재판관

이 소장은 헌법재판관으로서 권력보다는 약자의 편에 선 결정을 주로 내려왔다. 야간 시위를 금지하고 야간 사위 참가자를 형사 처벌하는 규정에 대한 위헌 결정(2010헌가2등)이 대표적이다.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

경찰 등 수사기관이 모자나 마스크로 범죄 피의자의 얼굴을 가려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결정(2012헌마652)도 내린 바 있다. 아무리 범죄 피의자라도 최소한의 인권은 보장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나온 판단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2016헌나1)에선 보충의견을 통해 세월호 참사와 같은 국가 위기 순간에 임하는 국가 최고지도자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소장의 목표는 '열린 헌재'를 만드는 데 있다. 그는 지난달 27일 취임사에서 "속 깊은 사고와 균형 잡힌 시선이 있어야 인간과 세상을 사랑하는 '열린 헌재'가 탄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밖으로부터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결정을 통해 헌법 정신을 구현하겠다는 포부다.

헌재 내부적으로는 재정비를 준비 중이다. 이 소장은 취임사에서 "다른 국가기관들처럼 헌재도 자신의 권한을 독점하고 있어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긴장감을 놓쳐 현실에 안주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를 위해 조직개편을 단행하는 한편 TF(태스크포스)를 꾸려 좀 더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내부 토론방식이나 연구방법에 개선할 점은 없는지 살필 계획이다.

◇첫사랑과 결혼…"다음 생엔 뮤지컬 배우"

이 소장의 부인 사랑은 각별하다. 첫 사랑과 결혼한 보기 드문 케이스다. 대학 입학시험을 치른 뒤 고등학교 졸업 전 친구들과의 미팅 자리에서 만난 여고생이 현재 그의 부인이다. 이 소장은 첫눈에 반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자리에선 파트너가 되지 못했다. 땅을 치며 아쉬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의 편이었다. 이후 두번이나 부인을 우연히 마주쳤다. 그렇게 첫 사랑은 이뤄졌고 결국 결혼까지 이어졌다.

그는 시와 노래를 사랑하는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 취임사에서 김종삼 시인의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는 시를 외워서 읊기도 했다. 시를 낭독한 이유에 대해 그는 "국민의 손을 잡아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헌재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한 것"이라고 주위에 밝혔다고 한다.

노래 실력도 뛰어나다. 애창곡이 조수미의 '나 가거든'이다. "다음 생엔 뮤지컬 배우를 해야겠다"고 할 정도다.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드럼 연주도 즐긴다. 운동을 좋아해 체력도 뛰어나다. 영하 17도의 지리산을 젊은 헌재 연구관들과 함께 오른 적이 있다. 낙오한 건 오히려 젊은 연구관들이었다고 한다.

[인간 이진성]
취미 : 드럼 연주, 시 읽기, 노래, 등산
주량 : 평균 이상
애창곡 : 조수미의 ‘나 가거든’, 가곡 ‘명태’, 포지션의 ‘불루데이’, 존 바에즈(Joan Vaez)의 곡들

[프로필]
△부산 출생 △경기고 졸업 △서울대 법대 졸업 △사시 19회·사법연수원 10기 △부산지방법원 판사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 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대전지방법원 강경지원 부장판사 △사법연수원교수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특허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수석부장판사 △법원행정처 차장 △서울중앙지방법원장 △광주고등법원장 △헌법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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