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끝까지 남탓하는 최순실…자신은 선량하다고 착각하는 '자기위주 편향'

이상배 기자 2017.12.21 05:00

20년 전이다. 1997년 12월13일자 월스트리트저널에 이런 설문조사 결과가 실렸다. "당신의 도덕성은 몇점 정도인가?"라고 물었다. 무려 89%의 사람들이 90점 이상이라고 답했다. 90점 미만이라고 답한 나머지 11%의 평균 점수도 74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 '도덕적 우월감'에 빠져 산다는 뜻이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이뤄진 또 다른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다음 중 누가 천국에 갈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선택지는 △빌 클린턴 대통령 △'성녀' 마더 테레사 수녀 △자기 자신. 복수 응답을 허용한 결과, 가장 많은 87%가 '자기 자신'을 선택했다. 테레사 수녀는 79%,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52%였다. '지퍼 게이트'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야 그렇다쳐도 테레사 수녀보다 자신이 천국에 갈 가능성이 더 높다니. 설문조사를 바티칸에서라도 한 걸까?

인간의 착각은 도덕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호주에선 "당신의 사업능력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86%가 자신의 사업능력이 평균 이상이라고 답했다. 13%가 평균 수준이라고 했다. 평균 이하라고 답한 사람은 1%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어떤 경우라도 자신에겐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는다. 심리학에선 이런 경향을 '자기위주 편향'(self-serving bias)이라고 한다. 자신은 선량하고 무결하다는 착각이다. 남이 하면 불륜이지만 내가 하면 로맨스다.

이런 경향은 문제가 터졌을 때 두드러진다. 자신이 아닌 남 또는 상황 탓으로 돌린다. 잘 되면 내탓, 안 되면 조상탓이다. 이를 '기본적 귀인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도 한다. 쉽게 표현하면 '남탓 증후군' 정도 되겠다.

누구나 조심씩 이런 경향이 있지만 다소 심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순실씨다. 14일 국정농단 재판의 최후진술에서 최씨는 끝까지 고영태씨를 탓하고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원망했다. 최씨는 "고영태 일당이 나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관두려 하자 나를 국정농단자로 제보하는 기획을 했다"며 "사람을 잘못 만나 이 자리에 섰다"고 주장했다. 또 "윤석열 검사님 정말 그러시면 안 된다. 한 개의 가족을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며 "내게 정경유착을 뒤집어 씌우는 검찰의 발상은 그야말로 사기극"이라고도 했다.

검찰이 징역 25년에 벌금 1185억원과 77억9735만원 추징을 구형하자 최씨는 "나는 한번도 사익을 취하지 않았는데 1000억원대의 벌금을 물리는 것은 사회주의에서 재산을 몰수하는 것보다 더한 일"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법정 밖으로 나간 뒤엔 분을 이기지 못한듯 "아아악"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삼성그룹을 압박해 딸 정유라씨의 승마훈련비를 뜯어내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아버지 최태민씨의 유산으로 호가호위하며 살아온 데 대한 죄책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겨울 우리 국민들이 난데없이 겪은 집단적 우울증은 누구의 책임일까? 최씨의 욕심이 없었더라도 대한민국 헌정사에 현직 대통령 파문이라는 오점이 남았을까? 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국내 최대 그룹의 수뇌부들이 한꺼번에 수감자 신세로 전락하는 사태가 벌어졌을까? 조카 장시호씨가 실형 선고와 법정구속에까지 이르게 된 건 애초 누구 때문일까?

최씨더러 혐의를 인정하고 법으로 보장된 방어권을 모조리 포기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아직 누구도 최씨의 죄를 예단할 수 없다. 다만 드러난 사실과 잘못에 대한 최소한의 염치를 기대할 뿐이다. 내년 1월26일 최씨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진다. 재판부의 선고 못지 않게 이날 최씨가 보일 태도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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