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맘대로 구속?…구속영장의 오해와 진실

[재판의 법칙-구속의 비밀 ②] '영장재판 실무편람' 참고하고 수시로 협의…'도주 우려' 속뜻은 "실형 예상"

양성희, 박보희, 한정수 기자 2017.12.28 05:00
삽화=이지혜 디자이너

지난 1월19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조의연'이란 이름이 올랐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이름이다. 조 부장판사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그에게 누리꾼들의 포화가 쏟아졌다. 심지어 가짜뉴스까지 돌았다. 조 부장판사의 아들이 삼성 취업을 약속받았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그러나 그에겐 아들이 없다.

유명인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할 때마다 영장전담 판사들은 이른바 '신상털기'의 제물이 된다. 영장전담 판사들이 제멋대로 구속 여부를 결정한다는 인식 탓이다. 정말 그럴까? 구속영장 재판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들을 가려보자.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구속영장 실질심사도 하나의 재판이라는 점에서 그 결과 역시 판사 개인의 재량에 달려있다. 그렇다고 판사들이 아무런 기준도 없이 멋대로 판단을 내리는 건 아니다.

법원에는 '영장재판 실무편람'이란 대외비 지침서가 있다. 어떤 경우 구속영장을 발부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기준과 사례들을 담은 책자다. 사실상 구속영장 발부 기준인 동시에 구속영장 재판의 안내서인 셈이다. 이 책자는 오직 영장전담 판사를 비롯해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들에게만 제공된다. 형사재판부 판사들도 휴일 당직 때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맡으면 이 책자를 참고해 구속 여부를 결정한다.

책자에 따르면 구속 여부에 대한 심사는 크게 △혐의의 소명 여부 △구속 사유의 유무 △구속의 필요성 여부 판단 등 3단계로 이뤄진다. 여기서 구속 사유 유무는 일정한 주거 여부와 증거인멸 염려, 도주 또는 도주 염려 등에 따라 판단된다. 또 범죄의 중대성, 재범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가능성 등도 고려 요소다.

판사들의 '집단지성'도 활용된다.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는 전국 영장전담 판사들만의 커뮤니티가 따로 마련돼 있다. 이를 통해 구속영장 발부 기준 등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한다. 영장전담 판사들끼리 정기적으로 간담회를 열기도 한다. 새롭고 지능화된 범죄유형에 맞춰 구속 기준을 다듬기 위함이다.

비공식적인 토론의 장도 적지 않다.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한 지방법원의 부장판사는 "법원에 '밥조'(함께 식사하는 무리) 문화가 왜 있겠느냐"며 "애매한 사건을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면서 서로의 오류와 편차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의 경우 영장전담 판사 3명이 같은 사무실을 쓰며 수시로 협의한다. 다른 부장판사는 "같은 사건에 연루된 A씨, B씨의 구속영장 재판을 각각 다른 판사가 맡게 되면 상호 논의가 불가피하다"며 "이 경우 일종의 합의부처럼 운용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오롯이 영장전담 판사 한사람의 몫이다. 일각에선 법원장 또는 형사수석부장판사가 지침을 주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지만 영장전담 판사들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펄쩍 뛴다. 한 판사는 "윗선의 관여는 전혀 없다"며 "검찰이나 일반 회사와 달리 법원에는 '보고'라는 개념이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영장전담 판사들이 구속영장을 발부 또는 기각하면서도 제시하는 사유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표현을 꼽으라면 △혐의 소명 △다툼의 여지 △도주의 우려 △증거 인멸의 염려 등이다. 판사들은 도대체 어떤 속뜻을 담아 이런 표현들을 쓰는 걸까?

우선 '혐의가 소명됐다'는 표현은 물증과 진술 등에 비춰 혐의가 인정된다는 뜻이다. 이는 영장전담 판사가 보기에 정식 재판에 가서도 유죄가 인정될 소지가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표현에 대해 지방법원에서 형사합의부를 이끄는 한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변명을 들어볼 만한 사정이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향후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날 가능성이 있는 경우가 여기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도주의 우려'는 사실상 재판에서 실형이 예상된다는 뜻이다. 영장전담 판사를 지낸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영장심사 단계에서도 향후 이 사건이 정식 재판에 넘어갔을 때 내려질 선고를 고려할 수 밖에 없다"며 "만약 실형이 예상된다면 도주의 우려가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증거 인멸의 염려'는 물증 파기에 대한 우려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대체로 공범 또는 관련자와 '말 맞추기'를 할 위험을 뜻한다. 한 부장판사는 "관련자들을 회유해 진술을 번복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있을 때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영장전담을 지낸 한 판사는 "법관으로서 애매할 땐 피의자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는 것이 기본이고, 형사소송법도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정하고 있다"며 "지금은 구속영장을 발부할 땐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 등 해당되는 칸에 표시만 하고, 기각할 때는 사유를 일일이 적게 돼 있는데 그 반대가 돼야 하는 것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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