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친절한판례氏] 고속도로에서 수신호하다 '쿵'…보험금 받을까

박보희 기자 2018.01.01 05:05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고속도로를 달리던 A씨는 눈길에 미끄러지는 앞 차를 피하려다 같이 미끄러져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말았다. A씨는 고속도로 1차선에 사고가 난 차를 그대로 세워둔 채 함께 타고 있던 B씨에게 1차로에 서서 뒤에 오는 차들에게 수신호를 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A씨가 앞 차에 항의를 하러 가는 순간, 뒤따라오던 C씨의 차량이 A씨의 차를 발견하고 피하려다 미끄러져 A씨와 B씨를 치고 말았다. 이 사고로 B씨는 크게 다쳤다. 

B씨는 A씨 측이 가입한 보험사에 보험금 지급을 요구했다. B씨 측은 "A씨가 사고 후 차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거나 안전시설을 후방에 설치하는 등 후행 사고를 방지하고 동승자를 이동시켜 안전하게 했어야 했는데 동승자에게 수신호를 하게 해서 도로에 방치했다"며 "운행 중 위험상태를 유지하게 해 사고가 났으니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보험사는 운행 중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결국 B씨 측은 보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보험사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지만, 2심 재판부는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판단은 B씨가 차에서 내린 뒤 당한 사고를 'A씨가 차량을 운행하던 중 사고가 났다'고 볼 수 있는지에서 갈렸다.

1심 재판부는 운행 중 발생한 사고로 판단했다. 1심은 A씨에게는 1차 사고를 발생시킨 후 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과실이, C씨에게는 전방주시 의무 태만과 안전거리 미확보 등의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A씨가 사고 후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아 B씨가 사고가 난 것으로 넓은 의미의 운행 중 발생한 사고로 볼 수 있다"며 "A씨 측 보험사는 B씨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운행 중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2심은 "차에서 내린 B씨가 수신호를 하던 중 사고가 난 것이어서 A씨의 운행으로 발생한 사고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사건은 결국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대법원은 B씨 측의 손을 들어줬다. B씨가 도로에 차를 불법정차하면서 사고가 난 것은 '운행으로 인한 사고'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08다17359)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제3조는 '자기를 위해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는 그 운행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사망 또는 부상을 입었다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고 정해두고 있다. 대법원은 "여기서 '운행으로 인하여'라는 것은 운행과 사고 사이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도로교통법과 도로교통법시행규칙에 따르면 사고나 고장 등의 이유로 고속도로나 자동차전용도로에서 자동차를 운행할 수 없게 됐을 때, 운전자는 자동차에서 뒤쪽 도로에 '안전삼각대'를 설치해야 한다. 야간에는 이와 함께 사방 500m 지점에서 식별할 수 있는 적색의 섬광신호·전기제등 또는 불꽃신호를 추가로 설치해야 한다. 또 사고가 난 자동차는 고속도로 등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 놓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대법원은 "A씨가 사고가 난 뒤 도로에 차를 그냥 세워둔 것은 불법 정차에 해당하고 그냥 둘 경우 사고를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불법정차와 사고 사이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관련조항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제3조(자동차손해배상책임)
자기를 위하여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는 그 운행으로 다른 사람을 사망하게 하거나 부상하게 한 경우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그러하지 아니하다.

1. 승객이 아닌 자가 사망하거나 부상한 경우에 자기와 운전자가 자동차의 운행에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아니하였고, 피해자 또는 자기 및 운전자 외의 제3자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있으며, 자동차의 구조상의 결함이나 기능상의 장해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 경우
2. 승객이 고의나 자살행위로 사망하거나 부상한 경우

제64조(고속도로등에서의 정차 및 주차의 금지)
자동차의 운전자는 고속도로등에서 차를 정차하거나 주차시켜서는 아니 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법령의 규정 또는 경찰공무원(자치경찰공무원은 제외한다)의 지시에 따르거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일시 정차 또는 주차시키는 경우
2. 정차 또는 주차할 수 있도록 안전표지를 설치한 곳이나 정류장에서 정차 또는 주차시키는 경우
3. 고장이나 그 밖의 부득이한 사유로 길가장자리구역(갓길을 포함한다)에 정차 또는 주차시키는 경우
4. 통행료를 내기 위하여 통행료를 받는 곳에서 정차하는 경우
5. 도로의 관리자가 고속도로등을 보수ㆍ유지 또는 순회하기 위하여 정차 또는 주차시키는 경우
6. 경찰용 긴급자동차가 고속도로등에서 범죄수사, 교통단속이나 그 밖의 경찰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정차 또는 주차시키는 경우
7. 교통이 밀리거나 그 밖의 부득이한 사유로 움직일 수 없을 때에 고속도로등의 차로에 일시 정차 또는 주차시키는 경우

제66조(고장 등의 조치)
자동차의 운전자는 고장이나 그 밖의 사유로 고속도로등에서 자동차를 운행할 수 없게 되었을 때에는 행정안전부령으로 정하는 표지(이하 "고장자동차의 표지"라 한다)를 설치하여야 하며, 그 자동차를 고속도로등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 놓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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