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기업이 외국서 담합했는데 한국 공정위가 제재?

12년차 공정거래전문 변호사가 말해주는 '공정거래로(law)' 이야기

백광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2018.01.08 08:22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 공정위는 2008년 12월 한국시장을 겨냥해 복사용지 수출가격을 담합한 4개 동남아 제지업체들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 약 40억원을 부과했다. 담합을 한 업체는 △인도네시아의 인다 키아트 △싱가포르의 에이에프피티 △태국의 어드밴스 페이퍼 △중국의 유피엠 창슈 등으로, 이들 업체들은 트리플에이회의라는 주기적인 회합을 통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지역 각국에 대한 복사용지 수출기준가격을 합의했다. 
트리플에이회의는 싱가폴, 방콕, 홍콩 등 동남아 주요 도시를 돌아가며 열렸으며, 직접 회합의 어려울 때는 전화회의로 대신했다. 이들은 동남아시아에서 덤핑방지관세 부담을 한국 내 고객들에게 전가하려고 카르텔을 결성하여 한국 및 몇몇 지역에 수출하는 복사용지의 가격을 부당하게 결정한 것으로, 쉽게 말해 자신들의 세금부담을 한국 고객에게 전가시키려고 서로 짜고 비싸게 판매한 것이었다.

공정위의 위와 같은 조치는 전원 외국사업자들로 구성된 카르텔에 대한 제재로, 여기서 들 수 있는 한 가지 의문은 어떻게 한국 공정위가 한국 내에서 발생한 담합행위도 아닌 외국에서 발생한 담합행위를 그것도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여 제재할 수 있었을까.

◇ 역외적용…국외에서 이뤄진 행위라도 국내시장에 영향 미친다면 한국 공정거래법 적용 가능

외국사업자라고 하더라도 국내에서 행한 행위에 대하여는 특별한 예외가 없는 한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국내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의가 없다. 하지만 외국에서 행해진 외국사업자의 행위에 대해 국내법을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 동안 논란이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종래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역외적용을 부정하자는 견해도 있었으나, 세계 경제의 통합이 가속화된 현대에 와서는 일반적으로 역외적용을 인정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대세로 되었고, 그 덕분에 한국 공정위는 위와 같은 조치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본래 특정국가의 국내법은 영토주권, 대인주권의 원칙상 그 국가의 영토 내 또는 자국민에 대하여만 적용된다. 하지만 경쟁법 같은 경우는 외국에서의 외국사업자 행위라 할지라도 자국 내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법의 역외적용(Extra-territorial Application)”에 대한 조항이 신설되어 OECD 국가 내의 협약과 FTA 협약 등을 통해 실제로 적용되고 있다. 이는 민법이나 형법 등 비교적 그 피해 범위가 협소하고 문화적 특색을 띄고 있는 법에 비해 경쟁법이 지닌 전세계적 공용성과 피해의 광범위성 때문이기도 하다.

공정거래법 제2조의2 역시 “이 법은 국외에서 이루어진 행위라도 국내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적용한다.”라고 역외적용을 규정하고 있으며, 이와 같이 자국 영토 밖에서 일어난 외국인 또는 외국기업의 행위에 대하여 국내법을 적용하는 역외적용이 특히 경쟁법 분야에서는 주로 외국기업 간 국제카르텔, 다국적 기업의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의 경우에도 적용되고 있다.

위 사건에서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제2조의2 및 2002년 흑연전극봉 사건에서 대법원 판례에 기초하여 “외국사업자가 외국에서 부당한 공동행위를 함으로 인한 영향이 국내시장에 미치는 경우에는 공정거래법이 적용되고, 따라서 비록 피심인들이 외국법에 따라 설립되었고 주된 사무소 또한 외국에 소재하는 외국사업자에 해당되지만 종이제품을 한국시장에 수출하고 있으므로 그 범위에서 국내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취지로 결정하였다.

◇ 역외적용 확대추세…세계 각국 기준에 비춰 문제없을 수준의 경쟁법 준수 노력 필요

이러한 경쟁법에 있어서의 역외적용 확대 추세는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장점은 경쟁법 역외적용으로 자국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단점은 우리나라 기업이 미국이나 중국, EU 등 거대시장의 경쟁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고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국제 카르텔 사건에 연루되어 미국과 유럽지역에서 부과 받은 벌금만 약 2조 4,000억 원으로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기업들이 각 경쟁당국의 역외적용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우선 잘못된 영업관행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또한 각 경쟁당국의 법 집행동향에 대한 전략을 이해하고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각 경쟁당국은 각자의 법을 일방적으로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세계 어느 나라의 기준에 비춰도 문제가 없을 수준으로 경쟁법을 준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법무법인(유한) 바른의 공정거래팀 파트너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백광현 변호사(연수원 36기)는 공정거래분야 전문가로 기업에서 발생하는 복잡다단한 공정거래 관련 이슈들을 상담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공정거래법 실무)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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